◈우리가 올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계 5:9,10)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가?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노래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의 그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된 자신의 정체성에 감격하고 있다. 우리 역시 내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황상민 교수가 쓴 《독립 연습》이란 책이 있다. 그 책에 보면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런 예를 들어 설명한다.
1950년대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자라던 젊은이들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폭력을 일으키는 사태가 유난히 심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그 원인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그중에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슨이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팀과 함께 직접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어갔다. 거기서 관찰한 결과 그 인디언 아이들에게 있는 문제를 발견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다 백인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로부터 “너희는 왜 그렇게 인디언 짓을 하느냐” 하는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면 부모들은 “넌 왜 자꾸 백인 흉내를 내느냐?” 하면서 꾸짖는다는 것이다.그러니 아이들에게 혼란이 생겼다.
아이들은 혼나지 않기 위해 인디언 색깔도 아니고 백인 색깔도 아닌, 자기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애매한 행동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기력감과 좌절감’이란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이 결국 마약에 손을 대게 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하며 폭력 문제에 휘말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젊은이들, 크리스천 자녀들이 겪는 갈등이 바로 이런 갈등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오면 ‘예수 믿는 애가 왜 그렇게 세상을 따라가는 거야?’라고 야단맞고, 엿새 동안 세상에 나가면 또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잘 섞이질 못한다. 혼전 순결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런 구닥다리 같은 생각을 아직도 하냐’고 핀잔 듣기 일쑤이다. 여기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저기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바로 오늘 이 시대 예수 믿는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최근에 외고에 다니는 딸을 둔 어느 교역자를 만나 자녀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었다. 중학교 때 난다 긴다 하는 애들이 모인 외고를 다녔으니 학교가 얼마나 살벌했겠는가? 그 아이도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고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어느 선교단체 전도사님이 와서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쳤다. 그 성경공부를 통해 딸의 정체성이 회복되고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갈등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아빠에게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아빠, 이제 문제가 다 해결되었어요.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어요.”
그러면서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기뻐하더란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원리가 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긍지를 심어주고 기독교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이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그 인디언 아이들과 같은 혼미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아이를 진정한 행복으로 이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긍지로 이 혼란한 시대에 혼란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는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생겨난다. 나는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이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