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서 남는 것 (정요석글)
우리 아버지는 3년 반 전에 9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6개월여 전에 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러 오지 않으셨다.
방으로 가서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일으켰는데 균형을 잡지 못하고 도로 누우셨다....
균형을 잡아 앉고 일어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그때 절감했다.
병원으로 모시고 가 여러 검사와 CT와 MRI 촬영을 통해 머리에 피가 고인 것을 찾아냈다.
머리에 구멍을 뚫고 고인 피를 빼내는 수술을 하셨고,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하셨다.
수술 후 치매 증상으로, 깊이 잠들지 않는 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셨다.
옆에서 간호하며 자는 사람이 그 움직임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집으로 퇴원하셔서는 마루를 무릎으로 다니시는 행동을 하셨다. 무릎에 피가 배여 너무 아파 움직이지 못하실 때까지 돌아다니셨고, 똥과 오줌을 가리지 못하셔 항상 기저귀를 차야 하셨다.
2달 여 동안 집에서 모셨는데, 목욕을 비롯한 여러 일들은 어머니와 나의 몫이었다.
아내는 다섯 아이를 키우기에도 바빴고, 정서적으로도 아버지는 나의 몫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나의 똥오줌을 치웠듯이 내가 아버지를 어린 아이처럼 돌봐야했고, 어머니가 돌보셔야 했다.
남자는 늙어서 구박받지 않으려면 아내에게 잘해야 함을 절감했고,
부모는 늙어서 자식에게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보이려면 자식과 정서적으로 깊어야함도 느꼈다.
두 달여 동안 집안은 유치원생 2명과 초등학생 3명의 떠드는 소리와 활달함으로 밝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배변을 기저귀에 하시는 치매 걸린 아버지를 인하여 힘듦과 우울함이 곳곳에 묻어났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힘드셔서 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온 식구가 아버지에게 매달려야 했고, 정상적인 생활도 목회도 힘들었다.
우리는 아버지를 노인요양센터에 모셨다.
자주 면회를 갔다. 그런데 아버지는 면회를 갈 때마다 치매에 걸린 멍한 표정 속에서도 우리를 알아보셨고, 눈물을 흘리셨고,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면 소리를 지르시며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드러내셨다.
그렇게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요양센터지만, 누추하고 좁은 가정이 더 좋은 것이었다.
같이 가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를 요양센터에 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고, 마음은 아프기만 했다.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가도 절감했다.
그렇게 한 달이 못 되게 계시다가 아버지는 열이 높아져 병원으로 옮겼고, 거기서 2달 정도 입원하셨다.
밥을 드시는 양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마지막에는 겨우 두유를 드셨다.
노인들이 마지막으로 드시는 음식이 두유였다.
그 두유마저 삼키지 못하실 때는 이제 죽음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늙고, 병들고, 치매에 걸리고,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시고, 마지막으로 두유를 드시고, 나중에는 아무 말도 못하시고 겨우 눈으로만 무언가를 표현하시는 것을 지켜봤다.
임종 때에는 아버지의 상태를 나타내는 기계들의 숫자가 모두 0이 되고, 그래프는 맨 밑으로 떨어져 수평으로 진행되는 것을 지켜봤고, 그 두 눈을 내 손으로 감겨드렸고, 옆에서 “하늘가는 밝은 길이...”란 찬양을 울먹이며 불렀다. 하늘나라에서 보자고, 들으시는지도 모를 소리를 하며 아버지와 마지막 대화도 했다.
늙고 병든다는 것...
사람은 결국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두유도 못 먹고, 눈도 깜박이지 못한다. 눈을 깜빡이며 뜨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 순간에 유일하게 진리인 것은 무엇일까?
모든 상황과 시간을 뚫고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지속되고 작동된다.
모든 육체와 모든 영광은 풀과 꽃과 같아 마르고 떨어지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어디에서나 작동되고 유지된다.
겨우 두유를 삼키고, 눈을 겨우 깜박일 때 유일하게 남는 것은 하나님 말씀뿐이다.
육체의 연단으로 인한 것들은 약간의 유익에 지나지 않고, 오직 경건만이 범사에 유익하고, 죽어서도 약속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가장 큰 유익이고,
허름한 자 하나를 따스하게 대하는 것이 죽어서도 가져가는 것이고
배우자와 자식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 매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가까이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르고 떨어지지 않는 유일한 것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지켜보며, 끊임없이 솟아나는 육체의 영광에 대한 욕심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향상교회 새벽기도 갔을 때 보인 구름의 모습이 교회에서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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