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건배사 구호 중 ‘소화제’가 인기다. “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다”란 뜻이기 때문이다.
귀가 어두우신 한 할머니께서 노인정으로 마실을 가셨다. 그런데 노인정에는 이 할머니께서 싫어하시는 약국집 할머니도 오셨는데 그분 역시 귀(청력)가 안 좋으셨다. 피차간에 귀가 안 좋으신 두 할머니가 만나신 것이다. 그날도 역시 약국할머니가 먼저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아이고- 우리아들이 어제 최고급 벤츠 쎄단을 샀는디 월매나 좋은지 몰러.” 그러자 이 할머니가 “아이구. 저 할망구는 별것도 아닌걸루 맨날 자랑질이여. 허다허다 안되니까 이젠 배추 세 단 산 것 가지구 자랑질을 하구 자빠졌네에. 배추 세단 산거를.”그러자 다시 약국할머니는 “암만! 좋은께 자랑을 하지. 그 벤츠가 월메나 비싼 줄 알아?” 하시자 또다시 “아이고 그까짓 거 배추가 좋아봤자 그게 배추지 뭐 배추에 금테라도 싸둘렀나?” 한분은 벤츠로, 한분은 배추로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바로 그때 옆에서 장기를 두시며 배추 세단 논쟁을 듣고 계시던 노인 중에 나이가 제일 많으신 왕 할아버지께서 시끄러웠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고 시끄러워! 시끄러. 이 할마씨들이 그냥 아까부터 왜 빤스 세장을 가지고 난리들이야? 그냥 쳐입어...”라고 말하셨다. 커뮤니케이션의 정확성 여부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잘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알아듣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옛날 사오정 씨리즈에 이런 것이 있었다. 부엌에 있던 엄마가 방안의 아이들 보고 “얘들아 몇 시나 됐니?” 물으니까 방안의 얘들이 “엠비씨(MBC)!”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엄마 왈 “아, 벌써 그렇게 되었니?”라고 말했단다. 어느 시골 동네에서 귀가 어두운 할머니가 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한 젊은 남자가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라고 하더란다. 이 할머니는 내가 늙었어도 뒷모습은 처녀같이 보이나보다 하고 가슴이 뛰었단다. 집에 와서 자녀들에게 그 말을 하니까 며느리가 밖에 나가실 땐 꼭 보청기를 끼고 다니시라고 챙겨주더란다.
며칠 뒤, 길가다가 다시 그 젊은이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있어 잘 들어보았더니 “같이 가 처녀”가 아니라 “갈치가 천원”이라고 외치더란다.
정확히 듣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알 것 같다. 초보운전자들은 자동차 뒤에 ‘초보운전’ ‘왕초보’ ‘당신도 처음엔 그랬잖아요’ ‘죄송해요 초보예요’라고 쓰거나 병아리 그림을 붙여놓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고 써놓으면 뒷 차가 최대한 배려해 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한발 더 나아가 ‘아기를 만들고 있어요’라고 써 놓는 게 더 높은 수준의 배려를 받을 수 있다고 일러주더란다.
어떤 집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교회에 다니는데 어느 날 며느리가 몸살이 나서 시어머니 혼자서 교회에 다녀오셨는데 며느리가 “어머니.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하셨어요?”라고 묻자 “잘 모르겠다, 얘. 무슨 소꼭지 젖꼭지얘기만 계속하시더라.”고 대답하셨다. 며느리가 궁금해서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목사님 어떤 설교를 하셨나요. 저의 어머니께서는 소꼭지 젖꼭지 얘기만 듣고 오셨다고 하던데요.”하니까 목사님이 껄껄껄 웃으시며 “네. 제가 오늘 ‘소극적, 적극적’이란 말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단다.
이걸 던졌는데 저걸 받았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편지로 소통을 할 땐 단어 하나를 가지고 고민하고 오해하고 상처받는 일이 있었다. 전화로 소통하면 액센트와 어조, 음 색깔까지 전달이 되니까 오해의 소지가 줄어들지만 그러나 아버지전화를 아들이 누워서 받는다 해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제 화상대화를 하면 좀 더 소통이 정확해 질 것이다. 그러나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좋은 설교나 강연이 제공돼도 들리는 것만 듣고 이해하는 만큼만 소통되는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들을 귀 있는 사람만 들으라”(마13:43 막4:9,23 눅8:8,14:35)고 하셨는지 알 것 같다. 수원지에서 아무리 많은 물을 보내도 수도 파이프가 연결되지 않은 집엔 한 방울도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