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의 하나님(김형태 총장)
작성자
관*자*L*
작성일
13.06.20
조회수
1967

에벤에셀의 하나님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는 통시적(通時的)이다. 여기까지 도와주신 과거의 주재자는 에벤에셀(Ebenezer: Rock of Help/ 삼상 7:12)이고 현재 여기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도우시는 분은 임마누엘(Immanuel: God with us/ 사 7:14, 마 1:22)이시며 장차 우리들의 앞에 가시면서 우리의 갈 길을 예비해 주시는 분은 여호와 이레(God-Yireh: God sees to it/ 창 22:14)이시다. 각 교회의 창립기념일이나 각 기관의 생일을 맞을 때마다 지금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게 된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한남대학교는 2013. 4. 15일로 개교 57주년을 맞이했다. 50대 후반의 나이라면 한인간의 생애 발달로 보더라도 완숙기에 이른 장년(壯年)의 나이다. 공자의 말을 빌리면 “知天命”(하늘에서 부여해준 사명을 깨닫는 나이)의 연륜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뿌리내리고(着根) 잎도 활짝 피고, 줄기도 올곧아야 하며, 열매도 많이 맺어야 한다. 한자로 압축 표시하자면 樹栽水邊 春花秋實(물가에 심어진 나무로서 봄에는 꽃피고 가을에는 열매 맺는) 모습이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설립 정신과 교육 목표에 집중하여 같은 방향으로 행진하면서 모든이가 정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合力해 善을 이루는 생산 지향의 모습이어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를 논할 때는 지났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동안 같은 방향으로 최선을 다한 동역자들에게 감사하며 서로 격려하는 성숙한 모습이어야 한다. 모든 이가 자기의 책임 완수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데에 놀면서 방관자가 된다든지 더 나쁘게 뒤로 잡아당기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어 놓는 훼방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동냥은 못주나마 쪽박은 깨지 말라”는 속담에 해당 하거나 “문턱에 버티고 서서 자기도 안 들어 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방해자가 되면 더더욱 안 되겠다. 흔히 직장이나 기관마다 다섯 종류의 “꾼”이 있다고 한다. ①자기가 받는 대우보다 더 많은 일을 하여 조직의 발전을 견인해주는 “일꾼”이 있고 ②대접 받는 만큼만 일을 하는 “삯꾼”이 있는가 하면 ③자기가 누리는 대접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기꾼”도 있단다. 이외에 ④다른 사람의 수고와 노력을 오히려 축내는 ‘방해꾼’과 ⑤서서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있다고 한다. 영국 수필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간 분류에서는 ①남에게 폐만 끼치고 조직을 해코지 하는 ‘거미 같은 사람’이 있고 ②도움도 안 되고 방해도 안 되는 무해무덕형 즉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개미 같은 사람’도 있고 ③열심히 수고해 자신도 기쁘고 조직에도 보탬이 되는 ‘꿀벌 같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는 위의세 부류 중 어디에 속하는가를 정밀히 자가 점검해 보는게 좋겠다. 어디가든지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사무엘상 7:12의 본문에서 “여기까지”라는 말은 마치 과거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57년을 지나고 보니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고백이다. 가난 할 때나 부유 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집에 있을 때나, 해외에 나가 있을 때나, 육지에 있을 때나, 바다에 있을 때나, 명예로울 때나, 수치스러울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시험 당할 때나, 승리할 때나, 기도할 때나, 유혹받을 때나,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저 멀리까지 길 양편에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오솔길을 가정해 보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기둥처럼 늘어서 있는 나무들, 아치를 이루며 뒤덮고 있는 가지들, 신록의 궁전 같은 모습이 얼마나 든든한가. 우리들도 지금까지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걸어온 동행자들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여러 경우의 만남 속에서 때로는 도와주고 때로는 도움을 받으며 함께 살아온 날들이 소중하지 않은가? 혹시 저쪽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그 가지들 사이에 각종 새들이 모여 앉아 여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의 자비를 노래하고 있지 않던가? ‘여기까지’라는 말은 과거 뿐 아니라 또한 앞쪽을 가리키기도 한다. 사람이 어떤 지점까지 와서 “여기까지”라고 말할 땐 아직 끝까지 다 이르지 못했다는 뜻도 포함하게 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더 남아 있다는 뜻이다. 시련과 기쁨, 유혹과 승리, 기도와 응답, 수고와 힘, 싸움과 성공 이런 것들을 좀 더 겪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포함하고 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갈길이 조금 더 남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얼굴, 성도의 교제, 하나님의 영광, 영원의 충만함, 무한한 축복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계속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여러분을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순례 길에도 똑같이 도움을 주실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의 길도 소망 중에 하나님과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손을 잡고 여행 가듯이 앞으로의 여정도 기쁜 맘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