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이야기] 미소를 띤 남학생
작성자
최*하
작성일
25.09.04
조회수
27

미소를 띤 남학생

 

 

모교인 영훈고 직업반 학생들 대상으로 특강을 부탁 받아 가게 되었다.

나는 영훈고에 재직하고 있을 때 여러 번 직업반 담임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직업반의 특성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다. 더욱이 수십 년간 함께 근무한 S선생님이 현재 담임이어서 여러 소식들을 듣고 있던 터라,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었지만 친밀도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아이들은 본교에 월요일에만 한 번 출석하고 그 외의 날에는 직업학교로 가게 된다. 그리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직업학교를 다니면서도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다. 제과제빵, 요리, 뷰티 미용, 실용음악, 간호조무사, 네일아트 등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노력하는 아이들. 그동안 거쳐 간 아이들 가운데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이미 직장이 결정된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만났다. 지루한 이론적 특강보다 모교인 영훈고에서 지냈던 나의 청소년기와 나의 글쓰는 재능으로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특성을 발견하는 ‘그림으로 자신 소개하기’와 타인과 자신의 행동유형을 살펴보는 ‘DISC 검사’를 통해 발표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 가운데 유독 눈에 밟히는 아이가 있었다. 남학생인데 체격이 좀 큰 아이 T였다. 활동을 하긴 하는데 수동적이었고, 발표할 순서가 오면 ‘모르겠다’는 말로 일관했다. 예전 나의 청소년 시기를 보는 듯했다.

 

더욱이 내가 강의를 할 때, T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의도적 시선 회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보아도 자신감이 없고, 그저 이 순간을 어서 지나고 싶은 마음을 보이는 행동이었다. 한편으로 고집이 셀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여러 청소년들을 보아왔고, 지금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럴 때 지혜가 필요했다.

나는 웃음을 띠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놓친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이제라도 해야겠어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나, 누가 앞에 나와 대표로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의 눈을 보아야 합니다.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대화는 눈으로!’”

 

아이들은 대답했다.

“대화는 눈으로!”

 

나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요. 대화는 말과 귀로만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거예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죠.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하는지 그 진심을 알려면 그 사람의 눈을 보아야 해요. 자~, 지금부터 제 눈을 보세요. 제가 어떤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지~, 그리고 그게 싫다, 그런 사람은 제 이마를 보세요. 제 이마에서 빛이 나가는지~ 하하.”

 

나의 넓은 이마까지 등장시킨 이 말에 아이들의 얼굴은 처음보다 밝아졌다. 작지만 웃음소리도 났다. 그리고 계속되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눈을 놓치지 않고 다라오며 보는 아이. 다름아닌 T였다. 감사하게도 T는 마무리될 때까지 내 얘기를 잘 듣고, 또 보고 있었다. 그리고 표정이 더욱 밝아진 것뿐만 아니라, 옅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변화였다. 작은 변화였지만, 우리 아이들은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변화를 일으킨다. 알려주면 따라하게 된다. 몰라서 모르는 경우가 많은 시기다. 아이들의 그 작은 변화가 시작이 된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인내와 소망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며 그 마음을 읽으며 수고를 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신간 [소망] 책에 싸인을 해서 각각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말씀이 담겨 있는 성구서표도 주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의 후배이며 제자인 아이들을 위해 마무리할 때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진심으로 기도했다. 예수님 만나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인생 살아가기를 축복하며 기도했다.

모두 마치고 담당 선생님과 식사를 하며 나누었다.

“선생님, T는 가정환경이 힘들고, 대인관계가 어려워요. 말이 없는 아이구요. 그런데 오늘 짧은 시간인데도 T가 이렇게 밝아지고, 또 나와서 발표도 곧잘 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선생님. T는 말을 못하는 아이가 아니고, 안 하는 아이였어요. 본인이 답답한 것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기쁘고 감사한 날예요”

 

이 글을 쓰는 지금 T의 작은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25.9.1)

 

 

아내와 두 딸 다솜이와 다빈이와 식사를 하며 위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래서 아빠가 영훈고 직업반 아이를 만났어. 그런데 한 남자 아이가 전혀 말을 안하는 거야. 시선은 다른 데를 보고 말야~.”

그때였다. 큰딸 다솜이가 외치듯 소리쳤다.

“아빠, 설마 그 아이가 T아니야?”

T의 이름을 예상치 못한 큰딸 아이의 입으로 듣는 순간, 나는 살갗에 소름이 일 정도였다.

“어! 맞아. 너 어떻게 아니?”

“아빠 내가 담당하는 아이야.”

 

다솜이는 현재 [초록 우산 재단]에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있었던 영훈고를 포함한 강북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돌보는 아이 중에 영훈고 학생이 있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만났던 T가 자신이 담당하고 돌보고 있는 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나와 다솜이뿐만 아니라, 아내도 둘째딸 다빈이도 너무 놀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하나님께서 아빠하고, 딸하고 연합을 하게 해서 T를 돌보고 계시는구나. 참 놀라운 하나님이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은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눈물이었다. 나를 바라본 아내와 두 딸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말했다.

”그러네, 정말 깜짝 놀랐어.“

T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본다, T가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고 딸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더 성장하고, 성숙해가길 기도한다.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