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이야기]제가 30년 전에 담임이었어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25.07.21
조회수
40

제가 30년 전에 담임이었어요

 

34년간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교사로 살아온 나로서는, 학교를 퇴임하고도 살아가며 경험하는 특별한 축복이 있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제자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다. 더욱이 예전의 모습보다 더욱 잘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의 삶을 현실로 접하게 되면, 더운 날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반갑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7월의 주일, 대방동에 있는 S교회의 중고등부 헌신예배에 말씀을 전하러 갔다.

영훈고로 오기 전 나는 첫 교직 생활을 대방동 쪽에 있는 한 남고에서 했기에, 이쪽 동네에 오면 감회가 새롭다. 그때 나는 신앙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술 잘 먹고, 글 잘 쓰고, 국어를 열심히 잘 가르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로 자인하고 있었다. 그 학교에서 믿음의 자매인 영어 교사를 만나 결혼하였고,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점차로 믿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어른이 200여명, 주일학교가 100명 미만인 교회였다. 담임목사님은 해외 외유 중이어서 교육부 장로님과 부장 집사님과 자리를 했다. 다과를 나눈 후, 오후 예배를 드리러 본당으로 갔다.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자리, 두렵고 떨리는 자리인데, 하나님께서 1시간 20분 동안 원하시는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중고등부 아이들의 헌신예배인지라,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통한 복음의 역사하심을 증거했다. 모든 순서가 은혜로 진행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출구에 서서 성도님들과 인사를 나누려는 그 때였다.

“선생님!”

하고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환한 웃음으로 서 있는 한 자매가 있었다.

“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아이. 숙이(가명)였다.

숙이는 내가 모교인 영훈고로 전근을 온 첫 여학생 담임반이었던 학생이었다. 그때가 1995년이었으니까 꼭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숙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그동안 두어 번 만났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수 년간 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예배 자리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갑고 기뻤다.

 

내가 모교의 부르심에 따라 영훈고로 건너온 것은 1994년 9월 1일자였다. 다른 학교가 아니라, 모교에서 부른 것이라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대방동에 있는 학교에서 영훈고로 전근을 온 것이다. 그리고 첫 담임, 여학생반이었다.

학기 초, 아이들의 얼굴을 익혀갈 무렵, 복도에서 만난 두 명의 여학생이 나를 보더니 깔깔대는 표정과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희 날라리 아녜요.”

 

그때는 ‘날라리’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두 명의 여학생은 그 당시 아이들에게서 유행인 깻잎머리를 하고 있었다. 깻잎머리를 한 아이들 중에는 속칭 ‘날라리’가 꽤 있었다. 자신들이 ‘날라리’가 아니라는 말은 ‘날라리’로 오인할까 염려하는 말이기도 했고, ‘날라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아이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너희 날라리 아니구나. 나는 너희 날라리라고 한 적 없는데~~.”

 

그 깻잎 머리 중의 한 명인 숙이가 내 앞에 있었다. 30년 전의 여고생 숙이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숙이는 학급 번호가 54번이었다. 그때는 키로 번호를 부여했는데,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였다. 숙이는 매우 활달하고 명랑한 아이였다.

이날 내가 더욱 놀란 것은 숙이를 교회에서 만난 것이다.

‘숙이가 교회를 다니고 있었던가?’

 

그 당시 나는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좋은 교사로 노력하는 열정을 가진 교사로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믿음이 바로 선 신앙인은 아니었던 때였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준 적도 없고, 기도를 할 줄도 몰랐던 때였다.

 

성도님들과 인사를 하다말고 나는 숙이와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있었다.

숙이는 금융계열의 회사에 있었고, 얼마 전 희망 퇴직을 했고, 남편이 신앙생활을 해서 자신도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숙이와 성도들이 빠져나간 예배당에 앉아서 짧은 대화를 나누고 기도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만남을 갖지만, 사랑하는 제자를 예기치 못한 가운데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더욱이 다른 곳이 아닌, 교회에서, 예배의 자리에서 만나게 하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제자 숙이, 믿음의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기도는 계속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우리를, 예배당을 채우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주위에 있던 교역자들과 성도들은 예기치 않은 스승과 제자의 만남을, 미소를 띤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숙이의 톡이 와 있었다.

“오늘 예상치 못한 감사함입니다^^. 선생님을 이렇게 뵙다니~. 조만간 북촌으로 놀러갈게요.”

나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어디서나 만나도 반갑고 기쁜데, 교회에서 만난 숙이^^. 몇 배 더 반갑고 기쁜 마음이 일어난다. 담임할 때는 양다리여서 기도 한 번 해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30년 세월이 흘러 같은 교회 공간에서 기도하는 기쁨이 큰 날, 참 감사하다. 그리고 고맙다^^.”

그리고 이어진 답장의 내용.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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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를 이렇게 잘 성장시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부부로 살아가게하소서. 믿음의 부모로 믿음의 자녀들을 잘 양육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