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이야기]선생님 저 돈 많이 벌어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25.06.28
조회수
9

선생님 저 돈 많이 벌어요

 

교사 생활 3년 차를 지나고 있을 때, 나는 신길동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과 모둠일기를 쓰고, 학급 생일 잔치를 하며, 입시와는 무관하게 즐겁고 기쁜 학교 생활, 학급 생활을 했었다. 그렇게 지난 3년 후 나는 모교인 영훈고등학교에서 은사님들의 부름이 있어 전근을 가게 되었다.

 

1992년 교직 4년 차, 중학교 교사로 있었던 때, 나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아내는 같은 재단의 남자 고등학교에서 만났고, 결혼할 때는 나는 중학교로 아내는 여고로 가 있는 상태였다.

그때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때가 많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붙잡고 기도하거나, 주님의 사랑으로 감싸안은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대로, 나의 사랑법으로 아이들을 대했기 때문이다. 교회도 아내를 따라 다녔지만, 성령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고, 양다리 신앙인으로 살고 있었던 때였다.

 

2025년 스승의 날. 전화가 계속 왔다. 오후가 되니 3시간 동안 연속 통화를 하게 되었다. 반가운 목소리, 보고 싶던 아이들, 사랑하는 제자들. 아니 이제 아이의 아빠, 엄마가 된 어른이 된 제자들이 연락을 해왔다.

특히 상규의 전화가 생각난다. 상규는 내가 중학교에 근무할 때 1학년 담임으로 만났던 아이다. 얼마 전 강남의 Y교회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얼굴이 크고 개구쟁이였던 상규의 얼굴이 통화중 계속 오버랩 되었다.

 

상규는 특유의 큰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 상규인데요. 스승의 날이라 전화드렸습니다.”

“그래, 상규야, 잘 지냈니?”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시작된 통화, 그리고 상규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나는 상규가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의 교회에 내 포스터가 붙어 있다고 하며 놀라서 연락이 왔었다.

 

상규와 연결된 통화는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선생님, 그런데 기억나세요? 저 중학생 때 돈 많이 벌겠다고 했었잖아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랬었니?”

“네, 선생님. 그 소원대로, 저 지금 돈 많이 벌어요. 금융계 지점장인데요. 얼마 전에는 현금으로 외제 차 두 대를 샀어요.”

학생 때 상규의 떠벌리는 듯한 모습이 떠올라 통화를 하면서 머금게 되는 미소를 어쩌지 못했다. 상규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선생님, 저는요, 선생님 하면 선생님만 떠올라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대해 주신 게 정말 달랐거든요.”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 학급에서 도난 사건 났을 때, 저희들 한 대씩 때리시고, 선생님이 잘못 가르쳤다고 하시면서 저희들에게 한 대씩 맞으셨잖아요. 저는 그 때가 제일 생각나구요. 그때 많이 울기도 했어요.”

교직 생활에 있다 보면 잊혀지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상규가 이야기한 ‘학급 도난 사건’이다. 그렇게 수십 대를 맞고 집에 왔을 때, 갓 결혼한 아내는 내 다리를 붙잡고 눈물 흘리며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 바보야?”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학급 모둠일기를 썼고, 학급 잔치를 열고, 아이들의 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들을 상규는 다 읊어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하기 어려운 여러 학급, 학교 생활을 상규와 그 당시 아이들과 했었던 것은 기쁘고 즐거운 추억이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그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심어주었던가.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감사한 순간들이 많지만, 미안한 것도 생각이 난다. 교회는 다녔지만, 기도는 해주지 못했던 그 당시, 교사생활로도, 신앙인으로도 미성숙한 때인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상규의 이야기를 통해, 부족했지만 부끄럽지 않은 교사생활로 기억하게 하여 참 감사한 마음이다.

 

이제 한 시대의 길을 같이 걷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하늘 소망’을 품고 살아가기를 마음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