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나의 제자여서 감사해
작성자
최*하
작성일
17.07.04
조회수
1642

너희들이 나의 제자여서 감사해
 
1. 내면을 보고 가르치는 교사의 길을 알려준 제자 병규
해마다 5월이 오면 생각나는 제자가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병규’.
1992년 내가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을 때 우리 반 아이였다. 병규는 기가 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핀 하나로 모든 것을 다 땄다. 이 좋은 기술을 좋은데 쓰면 얼마나 좋으련만 한강 고수부지에 가서 육군 대령차를 털었다. 경찰서에 잡혀간 병규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선처를 호소해 데리고 나왔다.
밝고 활달한 아이, 하지만 병규는 말썽꾸러기였다. 아니, 세상이 말하는 문제아라고 할까? 담배와 술은 기본이고, 본드를 흡입하고 여자 아이들과 성관계도 갖곤 했다. 우리 학교에 교생들이 왔는데 여교생에게 달려들어 가슴을 만진 사건도 있었다.
당시의 교장선생님은 “얘는 학생이 아냐!”하며 퇴학을 시키라고 했다.
‘중학교에서 퇴학이라니~’
나는 교장선생님께 무릎을 꿇고 병규를 지금 내치면 안 된다고 용서를 구하며 매달렸다. 결국 병규는 분당으로 전학을 가는 선으로 해결됐다.
이 당시 나는 교직 4년차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교직생활을 했다. 실제로 아이들과 친하고 즐겁게 지냈고, 국어도 재미있게 잘 가르치고 있었다. 같은 학교 동료교사인 아내를 만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직 믿음은 서지 않은 양다리 신앙인이었었다. 내 의를 내세워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규가 분당의 한 학교로 전학을 가고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해 나는 지금의 영훈고등학교로 전근을 왔다. 모교인 영훈고에서 생활하던 중, 나는 병규와 같은 반을 했던 성환이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이 5월 15일 스승의 날 밤 10시경이었다.
“선생님, 병규가 죽었어요. 부탄가스를 마시다가 목구멍이 얼어붙어 죽었대요.”
병규는 질식사였다.
그 순간 나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내가 무척이나 열정을 다해서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던 아이인데, 결국 퇴학을 면하고 전학을 보낸 아이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나는 자맥질 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나는 병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부족한 교사였던 것이다. 병규가 사고를 치면 좇아가 뒤처리를 해주며 유능한 교사라고 자부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병규가 왜 이러는지를 파악하고 원인을 찾아내어 병규 자체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로 인해 병규가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한동안 시달렸다. 교회는 나갔지만, 기도할 줄 모르는 교사, 겉만 신앙인인 교사. 나는 병규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교사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 외형만 보지 않고,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교사, 나는 그런 교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런 길로 들어서게 한 병규, 나의 제자에게 참 감사하다.
 
2. 기독교사로 나아가는 길 그 도구가 되어준 제자 석이와 욱이
영훈고에 와서 만난 두 아이가 있다. 석이와 욱이.
이 아이들은 둘다 루게릭병 환자였다. 특히 1학년 때 우리 반인 석이는 무척 심했다. 나를 만났을 때 손가락 다섯 개 중 세 개의 세포가 이미 죽어 있었다. 그 아이의 허벅지는 우리의 팔뚝처럼 가늘어져 있었다.
내가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던 중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을 붙잡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3년을 기도했다. 쓰러지고 자빠지며 자살을 기도하는 이 아이들에게 기도와 격려와 함께 함을 통해 나는 서서히 기독교사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3년간 거의 매일 학교에서 교회에서 가정방문을 통해 이 아이들을 만나 기도했다. 그리고 함께 울며 최선을 다했다.
3년의 세월이 흐르고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이 아이들을 살려주셨다. 병이 멈춘 것이다. 영적으로 구원해주시고, 육적으로 회복시켜주셨다. 석이는 대학교를 진학했고, 욱이는 결혼을 했다. 그 때 내가 40대 초반의 나이로 첫 주례를 했었다.
욱이는 결혼 생활을 잘 하고 평범히 30대 후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석이 또한 현재 장애인 관련 지원센터를 직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기처럼 불편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직업을 그쪽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이 아이들은 누구인가? 나에게는 예수님처럼 다가온 아이들이었다.
예수님이라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대상, 그 마음을 나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이었다. 사랑스런 나의 제자들, 나는 스승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 속에서 영향력 있게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힘들고 지쳐 있고, 병든 자, 연약한 자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값진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결국 석이와 욱이를 통해 나를 양다리 신앙인에서 진정한 기독교사로 세워가고 계셨던 것이다.
나를 기도하는 교사로 서게 해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 도구가 되어 준 석이와 욱이에게 참 감사하다.
 
3. 인내 가운데 소망을 알려준 생활교양반 제자들
2년 연속 영훈고에서 3학년 생활교양반 담임을 했다.
생활교양반은 직업위탁 학생들 포함, 대학에 뜻이 없거나 공부가 아닌 다른 방면으로 비전을 이루고 싶은 아이들이 신청해서 모인 좀 특별한 학급이다. 처음 생활교양반이 만들어졌을 때 아이들은 49명이 모였다. 쉽게 말해 학급에서 폭탄 같은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교실은 핵폭탄 같았다. 사고가 없는 날이 없었다. 이 학급을 기도 가운데 내가 자원해서 맡은 것이다.
아침 등교가 8시인데, 한 명 아니면 두 명 와 있었다. 청소는 거의 나 혼자 했다. 욕을 빼면 실어증에 걸릴 것 같은 아이들, 하지만 이 아이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기도하며 인내 가운데 최선을 다했다.
급기야 내 생일 날 교실 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패드 도난 사건도 일어났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지만, 이 아이들을 격려하며 지내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셨다.
그러던 중 아이들의 내면과 환경을 알게 되었다.
49명 중 편부 편모가 27명, 조부모 가정의 자녀가 8명, 소년 가장이 한 명이었다. 이 아이들은 나를 만날 때까지 사랑과 축복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긍휼한 마음으로 이 아이들을 축복해달라고 더욱 기도했다.
여러 강사들과 유명인들을 초대해 아이들을 만나게 했다. 아이들과 산에도 가고, 노래방도 심지어는 pc방도 갔다. 내가 제자들과 어디든 못갈까도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1년이 끝날 무렵, 하나님께서는 우리 학급에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셨다.
아이들의 욕이 사라졌다. 선한 아이들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또한 49명중 27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6명이 새롭게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동형이는 7등급 내외의 성적이었는데, 4년제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입학사정관제로 지원했다.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동형이는 국민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합격, 게다가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동형이는 겜중독이 아니라 우리 영훈고등학교의 어플을 만들 정도로 실력이 있던 아이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욕 먹고 버림 받을 것 같지만,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으로 보시고, 나에게 맡겨주셨다. 그리고 나를 따라온 아이들, 결국 인내 가운데 소망을 보게 해준 생활교양반 제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참 고맙고 감사해.”
 
4.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가 되어준 제자들
비기독교학교인 영훈고등학교의 복음화를 놓고 함께 기도해온 제자들이 있다.
2000년부터 15년의 매순간의 끈질긴 기도 끝에, 하나님께서는 오륜교회를 통해 영훈학원을 통째로 기독교학교로 만드셨다. 여러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아이들은 15년간 눈물의 기도의 씨를 뿌렸다. 그래서 비기독교학교 상황에서도 일주일에 두 번의 예배와 매일 점심찬양, 순결서약예배, 아버지학교, 찬양제 등의 기독행사를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오륜교회도 학교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영훈학교를 기독교학교로 접수하신 하나님,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2017년 4월 7일, 영훈고등학교 안에서 첫 학생 채플 예배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 300여명의 아이들이 함께 했다. 프로 찬양팀이 중심이 아니라, 나는 아이들이 기도하며 만들어가는 채플이 되기를 소망하며 아이들과 함께 준비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헌신하기 시작했다. 싱어팀이 만들어지고, 워십율동팀, 연주팀이 만들어졌다. 의자를 나르고 철거해야 하는 봉사팀과 음향영상팀, ppt자막팀 등이 구성되었다. 여러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영훈고등학교의 첫 채플이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척박한 영적 환경 가운데서도 상황을 탓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의 씨앗을 뿌렸던 인화, 나은이, 경은이, 한나, 희수, 소진이, 솔, 대영이, 샤론이, 고나, 수지, 수영이 등의 예전 제자들에게 참 감사하다. 또한 그 선배들의 영향력을 이어 받아, 현재 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제자들, 동권, 준섭, 가은, 선하, 유솜, 정윤, 여진, 민아, 하은, 유민, 성은, 지원, 태우, 혁규 등 기독교학교 첫 시작인 아이들에게 참 감사하다.
영훈고등학교에서 전개되는 기독학생 제자들의 섬김이 단순한 발걸음이 아니라, 영혼이 살아나고 힘든 자들이 회복되며 새롭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우리 제자들이 세상에서 복음의 승리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 믿는다. 더욱이 내가 하나님의 정해진 날에 하나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 감사의 도구가 되어준 우리 제자들에게 참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