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목사님과의 재회
작성자
최*하
작성일
17.01.04
조회수
1717

맹인 목사님과의 재회
 
인도네시아 유쓰코스타
2016년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인도네시아 유쓰코스타에 참여했다. 아내 오은영도 함께 코스타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 예전의 코스타 참여 때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가게 되었다.
코스타 강사들의 특징은 자비량 사역이며, 강사비도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원할 경우 개인 상담도 해야 한다. 코스타 강사들은 코스타 기간 동안 같은 곳에 있으며 서로 격려하고 같이 강의를 듣고 붙잡고 기도한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곤 한다.
인도네시아 유쓰코스타 강사진에 안요한 목사님이 계신 것을 보고 나는 자못 흥분이 되었다. 그 목사님과 나는 35년 전에 특별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요한 목사님은 맹인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하는 분이다.
연세도 70대 후반 가량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집회를 다니신다는 것에 상당한 도전이 되었다.

야학 교사를 하며
나는 대학 1학년 때 야학 교사를 했었다.
영훈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도호국단(현재의 총학생회) 간부를 같이 했던 선배가 졸업 후 자기가 나가는 야학에 국어 교사가 필요한데 봉사 좀 하라고 해서 별 생각없이 갔었다. 야학 장소는 현재 미아사거리 현대백화점 뒤의 작은 교회였는데 이름은 새빛 교회. 그리고 작은 예배당 한 켠이 바로 야학 장소였다.
이 때 나는 거의 술독에 빠져 살았다. 시를 쓰는 문학 청년으로 살았다. 어떤 때는 술 마시다가 야학에 온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검정고시 준비생들에게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노래와 함께 가르쳤으며, ‘천재 시인은 요절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죽을 것 같다고 읊조렸다. 그 때를 생각하면 그분들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믿음 없는 대학생 야학 교사를 두고 얼마나 기도했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 생각했다.
야학이 포함된 새빛 교회를 시무하시던 분이 바로 안요한 목사님이다. 35년 전 안요한 목사님의 모습이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짧게 대화하고, 문득 문득 스쳤던 생각이 난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 무렵 이장호 감독에 의해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영화가 극장가에서 상영되었는데, 바로 안요한 목사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안목사님은 프랑스어 교사를 하다가 실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사 안수를 받고, 맹인들을 위한 사역을 계속 해오고 계셨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12월 27일 유쓰코스타 강사 대기실에서 안요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목사님, 안녕하셔요?”
목사님은 70대 후반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빛이 좋아보였다. 목사님은 활짝 웃으며 대답하셨다.
“네, 안녕하세요?”
그 때부터 나의 설명은 시작되었다.
“목사님, 저는 최관하라고 합니다. 영훈고등학교 교사이고, 목사이기도 합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35년 전에 미아리 쪽에서 교회를 세우시고, 야학을 하신 적이 있으시죠?”
목사님의 음성이 상기되는 듯했다.
“네, 그렇죠~.”
“제가 그 때 야학 교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그 때였다. 안목사님께서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아유, 그러시군요.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때가 아주 옛날인데요.”
그 때부터 다소 긴 대화가 이어졌다. 옆에 있던 코스타 강사들도 함께 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안목사님 곁에 수행하는 조국장께서 이야기를 더욱 거들어주었다.
목사님과 기념 사진도 찍어주었다.
안목사님은 내 얘기를 들으며 감동어린 목소리로 계속 “감사합니다”를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그리고 인도하심, 기도하게 하신 것에 대한 순종,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가시는 은혜에 더욱 감사해 하셨다.
“목사님, 사실은 제가 참 죄송한 일이 있습니다. 야학을 할 때 목사님과 교인들이 믿음 없는 저를 두고 얼마나 기도했을까 생각하니, 참 죄송하네요. 그런데 언젠가 한 번 야학 학생들 여름 수련회에 저도 따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모두가 뜨겁게들 기도하는데, 저는 거부감이 들어, 믿지 않는 야학 선생님과 술을 사다가, 수련회장 옆 숲속 길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거든요. 참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목사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호탕한 웃음으로 웃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더욱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런 분을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 목사님이 되게 하셨으니까요. 게다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이렇게 35년 만에 코스타에서 만나게 하시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둘째 날 저녁 설교는 안목사님의 시간이었다. 나와 코스타 강사들은 함께 안목사님을 붙잡고 기도했다. 어린 청소년들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기를 위하여 기도했다. 목사님의 팔을 붙잡고 기도하는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에 사로잡혔다.
35년 전의 만남, 그리고 35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시고, 과거의 모든 것들을 간증으로 바꾸어버리시는 참으로 놀라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때에 기어이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복음의 영향력.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무척 감격스러웠다.
 
이렇게 살다 가고 싶어요
하나님께서는 안요한 목사님을 사용하셔서 45명의 어린 청소년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도록 인도하고 계셨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 부족한 자를 들어 아름답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일정들을 마쳤을 때 안요한 목사님의 사모님도 뵐 수 있었다.
“아유, 선생님. 얘기 다 들었어요. 참 감사하네요.”
“사모님, 제가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그 때 야학 교사였을 때 사모님께서 얼마나 많이 기도하셨겠어요~.”
안목사님은 집회장을 떠나기 전 차에 오르기 전에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최선생님, 내가 하늘나라 갈 때까지 이렇게 살고 싶어요. 복음 증거하다가 가고 싶어요. 선생님, 제가 필요할 땐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말고 연락주세요.”
나는 이 말이 끝나자마자 목사님을 한껏 안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네, 목사님. 잘 알겠습니다. 하나남께서 그렇게 사용하실 거예요. 더욱 강건하셔요.”
 
지금까지 안요한 목사님을 인도하고 사용하셨던 하나님! 앞으로도 천국에 가실 때까지 마음껏 사용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