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는 나야
사귀는 사이예요
복도를 다니다 보면 남녀 아이들이 밀착되어 있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속칭 ‘사귀는 커플’인데, 서로 애인 수준을 넘어서서 “여보”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청소년들의 남녀 교제가 학교 안에서 깊어진 것은 최근에 갑자기 일어난 현상은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과 개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정책의 영향과, SNS 문화의 거센 흐름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제는 교사들이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나아가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에 있다.
학교에서 만나는 커플 아이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복도에서 남녀 학생이 창밖을 바라보며 조잘거리는 모습, 서로 마주 보고 얼굴을 가까이 댈듯하며 속삭이는 모습, 4층과 5층 계단 모서리 쪽에 숨을 듯 밀착되어 있는 모습, 복도에 의자를 꺼내 남학생은 앉아 있고, 여학생은 그 위에 살며시 걸터 앉아 있는 모습, 교정에서 손을 잡고 다니고, 교문 앞에서 뽀뽀를 하는 아이들, 심지어는 등교 시간 학교 시간 같이 다니는 것 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 외에 항상 같이 있는 모습.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애질만 하냐
실제 부부 이상의 어른들을 능가하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선생님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서로 사귄다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자제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또는 ‘지도할 방법도 없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못 본 척 넘어가는 분들도 있다. 가끔 이렇게 야단치며 훈계를 하는 선생님들도 있긴 하다.
“이 놈들아, 학교에서 뭐하는 거야?”
“공부는 언제 할래? 연애질만 하고~.”
“빨리 들어가!”
선생님들의 이런 반응에 익숙한 아이들인지라, 잠시 말을 듣고 헤어지는 듯 하지만, 다음 쉬는 시간이 되면 별반 다를 바 없다. 선생님들이 원하는 변화가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아이들을 오랫동안 보아왔고, 지금도 접하고 있는 교사의 한 사람이어서,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많은 고심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10여년 전에는 몇 해 동안, 우리 영훈고등학교에서 순결서약식을 전교생에게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성문화와 바른 이성교제 등에 대해 내용을 알려줄 기회가 있었다.
지혜를 구하고
하지만, 여러 이유로 지금은 전체 학생들에게 이런 식의 교육을 할 상황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의 교제가 무분별하게 발전하면 성관계로 갈 것이고, 그러다보면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이 발생할 것이 눈에 보듯이 뻔하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성과 음란으로 무너지는 이 시기에 우리 아이들의 분별력 없는 사귐을 통해 힘든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수 년 전부터 하나님께 질문하며 기도했다.
오랜 동안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런 생각을 부어주셨다.
‘먼저 아이들과의 소통 관계가 이어져야 한다. 끊어지면 안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현실을 연구하고, 인정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의 끈이 이어질 때 아이들은 고민도 생각도 토해 놓을 것이고, 그 속에서 아이들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예전과는 좀 다른 마음으로 복도를 지나게 되었다.
주례는 나야
4층 복도에 한 쌍의 남녀 학생들이 서로 마주 보며 붙어 있었다. 사귀는 커플이 틀림없었다.
나는 미소를 띤 얼굴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이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순간 움찔하는 것 같았다.
나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사귀는구나~!”
잠시 머뭇거리던 중 여학생이 대답했다.
“네~.”
나는 아이들을 번갈아 보며 명쾌하게 말했다.
“주례는 나다!”
아이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들은 듯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네~?”
“너희들, 잘 사귀다가~ 나중에 결혼하면~ 주례는 나라고~. 왜 싫으니?”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기들을 야단치려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누가 프로포즈 했니?
그때부터 복도에서 아이들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학번하고 이름 알려줄래? 너희들 만나는데 잘 되고, 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기를 선생님이 매일 기도할게.”
아이들은 그제야 얼굴을 붉히며 학번과 이름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사귄지 얼마나 됐니?”
“550일요~.”
“누가 먼저 프로포즈 했니?”
남학생이 말했다.
“노코멘트요~.”
“하하, 그래? 너로구나. 프로포즈, 하하~.”
“너희들 혹시 교회는 나가고 있니?”
“네~.”
마침 둘 다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너희들 내가 보니까 교제 잘할 것 같은데,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남을 이루어가면 좋겠다. 그치?”
아이들은 어느덧 평안한 마음으로 나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네, 선생님.”
한 번 찾아뵐게요
나는 아이들과 함께 복도에서 기도했다.
“하나님, 두 아이가 청소년 시절에 같은 학교에서 만나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에 나가는 아이들인데, 세상의 방법으로 만남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남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서로를 아껴주고 기도해주며, 힘들고 어려운 마음을 위해 격려할 수 있는 관계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마음들이 서로에게 올라올 때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제어해주시고, 나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혹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 아이들이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제가 꼭 주례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시길 원합니다.”
한동안 기도는 계속 되었고, 아이들도 진지하게 기도를 하였다.
“얘들아, 또 봐~.”
남녀 학생은 활짝 핀 얼굴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 번 찾아뵐게요.”
여덟 커플의 아이들
‘찾아뵙겠다’는 말이 나에게는 가장 감사로 들린다. 한 번의 만남이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는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다. 이 아이들은 만남이 잘 지속되든 헤어지든 이렇게 자기들에게 관심을 갖는 선생님께 기댈 때가 있다는 것을, 교사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현재 영훈고에서 이런 식으로 관리하는 아이들 커플이 8쌍이다. 이 가운데 남학생 후배와 여학생 선배가 사귀는 만남도 한 쌍이 있다.
한 번은 각 층마다 이 커플들이 한두 쌍씩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발걸음이 분주했던 날이 있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아이들이 “내가 주례야!”, “내가 주례야!” 알지?“하고 외치는 소리에, 깔깔대고 웃고, 어떤 아이들은 “고맙습니다.”를 크게 외치기도 한다.
사실 이 아이들이 결혼을 할지 안할지는 모른다. 아니, 대부분은 헤어질 것도 같다. 고등학교 시절 만나 결혼까지 골인하기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결혼이 가능한 것 아닌가?
주례 안해주셔도 돼요
그렇다면 지금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현재 아이들이 이렇게 사귀는 것을 ‘교사’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교사가 아이들과 관계를 잘 형성해 놓으면, 아이들이 사귀는 중에 찾아와 고민을 상담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므로, 교사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자주 나에게 다가왔다.
조금 전 쉬는 시간에는 두 커플의 아이들을 만났다.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여학생이 시무룩하고 남학생은 여학생을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앞을 붙잡고 말했다.
“주례는 나야!”
아이들의 얼굴에 순간 웃음이 확 돌았다. 우울한 이유를 듣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복도에서 기도했다.
이 아이들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 계단 옆에 다가온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는 성당을 다니는 아이인데, 며칠 전 복도에서 남자 친구와 같이 있었던 아이였다.
“선생님, 저 이제 주례 안 해 주셔도 돼요.”
그래도 해줄게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에게 물었다.
“응? 왜?”
“남자애랑 헤어졌어요.”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힘들겠다. 근데 헤어졌어도 주례는 내가 할 수 있어. 너, 남친 또 생기면 데리고 와. 알았지? 네 주례는 내가 꼭 해줄게.”
“우와, 정말요? 선생님.”
여학생은 나의 이 말에 얼굴이 밝아지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나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내일쯤 남친과 헤어진 이 여학생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리라고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아이들과 관계의 끈을 놓지 않게 하신 하나님, 주어진 환경과 상황, 특히 우리 아이들을 탓하지 않게 하신 하나님, 성령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내가 주례를 할 때쯤이면 나는 몇 살이 되는 건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