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별’ 이야기 3
회복된 강아지 ‘별’
시장통에 버려졌던,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강아지 ‘별’이가 우리 집으로 온 지 10개월이 훌쩍 넘어서고 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두 딸 다솜이 다빈이는, 애지중지 별이를 한 가족으로 여기며 사랑을 쏟아 부었다. 돈도 100여만 원이 소비된 것 같다.
그 까닭으로 이제 별이는 건강을 온전히 회복해서, 진짜 ‘개’가 되었다. 처음에는 손만 뻗으면 뒷걸음질 치던 강아지가 사람을 보면 다가오고, 혀로 핥는다. 짙은 애정 표현으로 엉덩이를 사람에게 갖다 붙이기도 하고, 발라당 누워 배와 아랫부분을 다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거의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잘 때 베개를 베고 잔다. 사람 모양으로 굽혀져 잔다. 사람처럼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일명 ‘개하품’이다. 밥 먹기 전에 아내는 기도를 시킨다. 그러면 눈을 감는 듯이 있고, 앞 발 두 개를 아내의 손에 맡긴다. 산책을 나가면 십대의 청소년들이 뛰는 것처럼 쾌속 질주한다. 내가 들어가면 장난을 걸고, ‘나 잡아 봐라’를 하고, 도망 다니고 따라온다. 내 나이 50대 중반에 이렇게 강아지와 놀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별’이는 이제 더 이상 아프고 병들어 죽어가는 강아지가 아니라, 우리 가정의 건강한 아들(?), 사내가 되었다. 할렐루야~!
개 옷 만드는 아내
아내는 본래 강아지같은 짐승을 무척 싫어했다는데,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별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병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밤새워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보살펴 준 사람이 바로 아내다. 그 은혜를 별이는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별이는 아내를 가장 좋아하고, 아내 역시 별이에게 애정의 모습을 보인다.
아내는 밤마다 2층에 올라가 재봉질을 한다. 아내는 재봉질의 은사가 있다. 패딩을 만들고, 가방을 만들고, 앞치마도 잘 만들어낸다. 심지어는 강아지 목줄까지 만들어 내었다.
어느 날 보니 동네의 강아지들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옷감이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아뿔싸! 내 아내가 만든 것이었다. 아내는 이렇게 재봉질을 하여 동네 지인들과 개를 위해 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옷감을 구입하는 돈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고 있다는 것이고, 지금도 쑤욱쑤욱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 같아져요
아내와 둘째 딸 다빈이가 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작지 않은 사고가 났다.
셋이서 달리기를 하던 중,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별이의 목줄에 아내의 두 다리가 걸려 공중 부양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낙하, 아내는 그 결과로 깁스를 해야 했다. 다친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았다. 아내는 이렇게 표현했다.
“여보, 내 다리가 아작이 났어.”
아스팔트를 향해 그대로 넘어진 것이니, 그럴 법도 했다.
아내는 근 두 달을 고생했다. 깁스를 하고 쉬면 그나마 나으련만 아내는 국내외 강의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만 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아내가 다친 것이 자기 때문인지 아는 듯 한동안 별이는 조용했다. 그러나 아내가 점점 나아갈수록 별이의 쾌활함은 다시 나타났다. 더욱이 요즘은 미소를 짓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병원에 데리고 다니고, 먹을 것을 챙겨주며, 데리고 산책을 잘 나가는 큰딸 다솜이를 만나면 별이는 거의 높이뛰기 선수처럼 점프를 하며 발광을 하는 듯하다. 그리고 다솜이에게 미소를 잘 보낸다. 그러면 다솜이는 말한다.
“웃지 마.”
지금은 아내의 발도 회복이 되어 잘 다니고 있다. 이런 여러 과정을 통해 우리 가족과 별이는 더욱 깊어지는 애정을 누리고 있다.
주인을 잘 만났어요
별이의 회복 과정을 보며 사랑은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그것은 꼭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미물인 짐승에게도, 자연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별이가 동물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별이, 너는 주인을 잘 만난거야. 그래서 이렇게 건강을 찾은 거야.”
이 소리가 나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다.
“너는 주인을 잘 만나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 주인 알고 있니? 바로 하나님이야.”
별이를 볼 때마다, 그리고 별이와 함께하는 우리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주인, 우리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