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만 시켜주세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16.04.26
조회수
1672

졸업만 시켜주세요
 
생활교양반 호선이
호선이는 금년에 내가 담임으로 만난 아이다. 영훈고 3학년 생활교양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 부적응아나, 대학에 뜻이 없는 아이. 속칭 무기력한 아이나 비전이 없는 아이들이 모인 우리 반은 작년부터 시행된 반이다.
이 반이 금년에도 계속 이어져, 내가 연속 2년 담임으로 섬기게 되었다.
호선이는 3학년 올라와 매일 지각이나 조퇴를 했다.
항상 얼굴빛이 우울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을 했다. 나에게 가장 많은 말을 한 것은 ‘조퇴해도 돼요?’였다. 또 말을 할 때면 한숨을 푹푹 내쉬곤 했다.
나는 호선이와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선아, 내가 알기로 호선이는 직업학교를 가기를 원했던 것 같던데, 맞니?”
호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대답했다.
“네.”
 
아빠가 없어요
호선이는 기타를 잘 친다. 그래서 2학년 말 직업학교 신청을 했었다. 하지만, 2학년 때의 결석 일수가 많아 직업학교에 합격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생활교양반으로 오게 된 것이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호선아, 괜찮으면 너에 대해서 얘기해 줄 수 있겠니?”
호선이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들더니, 천천히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아빠가 없어요.”
이 한 마디의 말이 호선이 전체를 대변하는 듯 했다. 그만큼 호선이의 말은 무거웠다.
그래도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호선이의 마음을 읽기에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어떻게? 아빠가 안 계신 거니?”
호선이는 계속 입술을 열었다.
“제가 9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로요. 그 때부터 저는 6살 동생하고 엄마하고 셋이 살았어요.”
 
상처가 깊어요
호선이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눈물보다 더욱 진한 아픔을 나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호선이의 가슴에 남아 있는 아빠의 빈 자리, 그 상처가 그림자처럼 커버린 것이 감지되었다.
나는 호선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격려했다.
“호선아, 괜찮니? 더 얘기할 수 있겠어?”
호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선생님. 얘기할 수 있어요.” 다음의 이야기는 호선이가 한 말을 요약한 것이다.
호선이의 어머니는 그때부터 주방 보조 등을 하며 어린 두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그 어머니의 힘겨움 또한 나에게 전달되어 왔다.
호선이의 건강도 좋지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 정신과 약을 복용하였고, 지금도 가끔 복용한다는 것이었다. 어지럼증과 천식이 심하고, 코피도 자주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2학년 때까지 지각과 조퇴가 많았고, 결석도 자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말을 많이 하게 돼요
호선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고 며칠간 지켜본 것과는 달리, 이야기를 잘하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호선이의 입술에 집중했다.
“그리고요, 선생님. 저는 친구가 없어요. 밥도 안 먹거나 혼자 먹구요. 학비 지원도 안 된다고 해서 엄마가 더 힘드세요.”
의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한부모 가정으로 당연히 지원이 되었을 텐데~. 여러 이야기들을 1시간 넘게 풀어가는 호선이가 참으로 대견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선아, 너는 말을 못하는 아이가 아니구나. 말을 잘하는데~. 평소에도 이렇게 말을 잘하니?”
호선이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녜요, 선생님. 이상해요~. 오늘은 말을 많이 하게 돼요.”
“그랬구나, 호선아. 잘했다. 내가 얼마든지 들어줄테니까 하고 싶은 말 다하렴.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 하지만, 힘을 내. 길이 있을거야. 특히 난 기도하는 선생님이잖아. 알지? 네가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지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아가면 멋진 인생을 너에게 선물로 주실거야. 하나님께서 말야.”
기도해도 좋다는 호선이의 손을 붙잡고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호선이를 축복하시고,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금년에 부족한 저에게 보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호선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진로를 찾고, 꼭 하나님의 큰 일꾼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는 한참 계속되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평강을 부어주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들었을 때, 호선이의 얼굴이 처음보다 밝아져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빨리 만나야 해요
호선이 어머니가 전화를 해왔다.
“선생님, 제가 오늘 직장에 가긴 가야 하는데요. 호선이 때문에 제가 선생님을 빨리 만나야겠어요.”
아침 일찍 전화를 하신 호선이 어머니는 점심 무렵 학교에 방문했다.
호선이와 셋이 자리를 했다.
호선이 어머니는 내가 뭐라고 할 겨를이 없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우리 호선이가 참 착한 아이예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때부터 너무 힘겨워 해서, 하지만 제가 돌보아줄 수가 없어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돌아오거든요. 대학을 가도 돈이 없어서요. 선생님, 고등학교 졸업만 되게 해주세요.”
어머니의 말씀에 힘든 눈물이 묻어나왔다.
나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얼마나 힘이 많이 드셨겠어요? 호선이하고 동생하고 키우시느라~.”
이 말을 듣는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아녜요. 선생님. 제가 아이들한테 그냥 미안하죠. 제가 버는 걸로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서~. 그러니까 꼭 졸업만 시켜주세요.”

다 잘 될 거예요
졸업만 시켜달라는 어머니. 어머니의 힘들고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어머니, 호선이는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할 수 있어요. 조금도 염려 마세요.”
그리고 이어서 나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 아빠가 돌아가셨으면 당연히 한부모 가정이니까 학비 지원이 나라에서 나올텐데 호선이 말로는 안 나온다고 말하던데요. 어찌 된 건가요?”
호선이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네, 선생님. 그때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1억을 넘게 받았는데, 어떤 범이 있나 봐요. 일정 금액 이상을 받으면 지원이 안 된다고요. 그때도 그랬지만, 현재 정부에서도 그렇다고 들었어요.”
나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한 번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혹시 그것이 사실이라면 호선이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부어주고 계셨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오늘 참 잘 오셨고, 말씀도 잘해주셨어요. 호선이가 이제부터 힘을 내어서 꿈을 잘 찾아가도록 저와 어머니가 힘을 합치면 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다 잘 될 거예요. 어머니도 더욱 힘내셔서 열심히 사시고 힘든 일 생기면 연락주세요. 제가 기도할게요. 하나님께서 호선이와 어머니, 호선이 동생도 모두 축복하실 거예요.”
호선이의 어머니 얼굴이 지난 번 호선이 얼굴처럼 밝아졌다.
 
힘든 상황인 호선이와 호선이 가정을 구원의 은혜 가운데 회복시키시고, 호선이의 건강을 온전케 하시고, 물질적인 부분들을 채워주시며 기어이 이 가정을 만나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이 가정을 위해 기도 부탁드리고, 제가 호선이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호와샬롬!
 
영훈고에서
울보선생 최관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