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을 배회하는 우등생의 눈물
울며 다가오는 제자
퇴근 길, 천안에서 현직 선생님들 강의가 예정되어 있는 날이어서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향하고 있었다. 그 때 교정 언덕배기 끝 무렵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3학년 여학생 지영이(가명)였다. 그런데 먼 발치에서 보아도,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몸짓과 얼굴 표정인 지영이. 나는 발걸음을 오른쪽으로 급회전하여 지영이에게 다가갔다.
“지영아, 얼굴빛이 안 좋은데~.”
“와~앙!”
지영이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품으로 달려들며 울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나의 이 말에 울음보가 더 터진 것이라고 해야겠다. 나는 자연스럽게 지영이를 50미터 앞 벤치로 인도했다.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마음속으로 지영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다 잘 될거야.’
지영이는 벤치에 앉아서도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울먹거리는 고3 여자 아이. 불현듯 오늘 모의고사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 년 전 우리 학교 고3의 한 여학생이, 모의고사를 본 날이면 교정을 돌아다니며 허공에다 욕을 하고, ‘으악’ 소리를 질렀던 것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모의고사 시험이 주는 실망과 좌절 등의 심리적 위축감이 아이들에게는 대단하다.
모의고사를 망쳤어요
지영이는 전교에서 성적 최상위권을 다투는 아이다. 외모도 예쁘장하고, 성실하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서 만나지는 않았지만, 지영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지영이는 참 모범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는 아이다. 그래서 지영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들에만 수시로 지원하고, 학교에서도 꽤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속 울고 있는 지영이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영아,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울어. 눈치 보지 말고~ 그래야 속이 조금이라도 풀리거든. 선생님 있다고 개의치 말고~.”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눈물을 흘리는 지영이가 순간 무척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지영이가 편히 이야기 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지영이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 오늘 모의고사를 망쳤어요~. 특이 국어를 잘 못 봐서요.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 불안해서~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랬구나. 내가 보니까 국어가 오늘 건 많이 어렵더라. 실수가 많았니? 하하하, 지영이가 어려울 정도면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풀었으려나~.”
지영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한 상태였지만, 조금씩 마음이 괜찮아지는 듯했다.
격려 엽서를 쓰고
나는 천안으로 내려가야 하는 시간이 촉박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상태로 지영이를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다가 힘들고 어려움을 당할 때 누군가의 격려와 기도는 이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또한 주님의 때라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의지하는 인생으로 바뀌게 하기 때문이다. 그 때가 바로 이 순간일 수도 있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에게는 영적 예민함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사실 우연히 나와 지영이가 교정에서 만난 것 같지만, 모든 만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만큼, 이렇게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그 뜻을 분별하고 순종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아, 잠깐만~.”
나는 가방에서 격려 엽서를 꺼냈다.
“아~! 이거.”
지영이는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아~ 지영이 이거 아니?”
“네, 그럼요. 선생님. 저에게도 예전에 한 번 써 주셨어요. 식당에서요.”
나는 가끔 이 자필 엽서를 들고 아이들 점심 식사를 할 때 식당으로 찾아다녔다. 그리고 격려의 글을 써주었었는데, 그 때 지영이도 한 장 받아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 그럼 오늘도 지영이를 위해서 또 한 번 글을 써야겠다.”
나는 활짝 웃으며 붓펜을 꺼내 격려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제자 지영이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더하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으로 언제나 함께 하실 것이며, 소망하는 대학과 과에 잘 진학하도록 인도하실 줄 믿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울보선생 최관하”
성구서표를 뽑고
지영이의 얼굴이 무척 밝아져 있었다. 하지만, 지영이의 눈에는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지영이는 결국 또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흑~흑~흑~”
나는 지영이에게 물었다.
“왜? 지영아. 계속 불안하니?”
“아뇨,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제가 원래 눈물이 많아서 자꾸 우는 거예요.”
내 입가에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하하 그렇구나. 사실 울보는 내 별명인데, ‘울보선생’이잖아. 지영이도 ‘울보’로구나.”
나는 엽서를 건네었다. 그리고 성구서표가 있는 말씀 컵을 건넸다.
“지영아, 이거 아니? 한 번 뽑아보렴.”
지영이의 눈이 반짝였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성구서표를 가운데 두고 있는 스승과 제자, 지영이와 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도 이 성구서표를 경험한 아이들일 것이다.
지영이는 성구서표를 한 장 뽑았다. 이 때 지영이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다.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잠언 2:10)
기도의 축복이 가득하고
지영이는 내가 써준 엽서와 이 성구서표의 말씀을 받아들고 무척 기뻐했다. 나의 위로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격려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영아, 선생님이 널 위해서 한 번 기도해도 되겠니?‘
지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교정에서 지영이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교정에서 우연한 만남일 수 있지만, 놓치지 않고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시간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영이가 오늘 모의고사로 인해 상심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학교 생활을 잘해왔고, 또 좋은 성적도 주셨는데, 이제 수능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태입니다.
오늘 말씀 주신 것처럼 지영이에게 지혜와 지식이 가득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어렸을 때 잠깐 교회에 나간 것 말고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지영이 마음 가운데 거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시간 이후로는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며 입시 준비 하게 하시고, 또한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잘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기도하는 지영이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오늘 격려엽서를 쓰게 하시고, 말씀도 뽑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뜻을 꼭 이루실 줄 믿습니다.
지영이가 수능 보는 날 최상의 컨디션을 주시고, 실수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좋은 성적으로 잘 진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함께 하실 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관하 초컬릿이야
지영이의 눈과 얼굴이 무척 밝아졌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지영아. 나도 좋다. 그런데 너를 데리고 한 군데 가야할 데가 생각났어.”
“네? 어디요?”
“학교 앞 문방구에, 내가 너에게 사주고 싶은 것이 갑자기 생각 나서~. 가자.”
나는 교문 밖에 붙어 있는 문방구로 괜찮다고 하는 지영이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초컬릿을 두 개 집었다.
“자, 힘들 때 먹으렴.”
초컬릿을 받아드는 지영이에게 나는 천천히 말했다.
“지영아, 이 초컬릿의 이름은 ‘Ghana’ 초컬릿이야. 하하하. 이름이 뭐라고? 가나, 과나, 관하 초컬릿이란다. 힘들 때면 언제든지 ’관하‘ 초컬릿을 찾아주세요.”
지영이의 눈망울이 왜 그런지 또 붉어지는 듯 했다.
나는 지영이에게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의 사랑 표시를 하고, 급히 지하철 계단으로 뛰어내려갔다.
가까스로 서울역에서 천안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밖으로 보이는 어스름 저녁, 기차 차창으로 지영이의 눈물 어린 얼굴이 떠올랐다. 지영이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게 하시고, 아이에게 따스한 격려를 허락하신 주님께 깊이 감사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 땅의 청소년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사랑이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