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파출소예요
밤 12시의 전화
자정 무렵이었다. 담임을 하고 있는 반의 여학생 미영이의 전화였다.
“응, 미영이니?”
나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웅웅~. 좀 와주시면 안 돼요?”
미영이는 반쯤 울음 섞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다급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인데? 응? 미영아, 천천히 말해 봐.”
“선생님, 저 지금 파출소예요. 술 먹다가 걸렸어요.”
미성년자 출입 금지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먹다가 순찰을 돌던 경찰관에게 붙잡혔다는 것이다. 나는 ‘으휴~. 또~’라는 신음 같은 소리가 나모 모르게 흘러 나왔다. 사건이 끊이지 않는 학급, 그 학급이 바로 우리 학급이다.
술 먹다가 걸렸어요
나는 천천히 그리고 미영이의 마음을 만지려 노력하며 통화를 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수유에서요~. 술 먹다가요~. 친구 오랜만에 만나서~”
“그럼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지. 엄마한테 연락했니?”
“아뇨, 선생님. 엄마한테 전화하면 안돼요. 관심도 없어요. 아빠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혹시 알면 저 죽어요. 선생님, 다음에 제가 직접 얘기할 테니까, 이번에 선생님이 빼주시면 안될까요? 어른이 오면 바로 풀어주신대요.”
그 때였다. 옆에서 전화 바꾸라는 소리가 굵직한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담임 선생님이신가요?”
“네~. 수고 많으시죠?”
“미영이 이 녀석이 미성년자 출입금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적발되었습니다. 훈방 조치를 하려 하는데 그냥 내 보낼 수가 없어서요. 나가면 이런 녀석들은 또 술집으로 갈 확률이 높거든요. 그래서 부모님께 연락하라 했더니, 한사코 담임 선생님한테 연락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경찰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바로 파출소로 차를 몰았다.
한밤중의 대화
“선생니~임.”
미영이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겼다. 그 뒤에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아마도 같이 술을 마신 친구인 것 같았다.
나는 경찰관이 건네주는 종이에 몇 가지 사항을 적고, 미영이를 데리고 나왔다. 같이 있었던 친구는 언니가 데리러 온다고 해서 좀더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미영이를 차에 태웠다. 다음 대화는 차가 출발하기 전 이야기다.
“미영아, 이렇게 술 자주 마시니?”
“아녜요, 선생님.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서~”
화장 짙은 얼굴에 눈물을 흘린 미영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 그렇구나.”
“죄송해요.”
미영이는 죄송하다 소리를 잘한다. 직업 위탁생으로 직업학교를 다니다가 돌아온 것이 한 달 전, 그 때 나에게 ‘선생님 품으로 돌아갈 거예요.’ 외쳤던 아이. 그리고 본교로 복교하던 날, 진짜로 내 품에 안겼었다.
말썽을 피지만 살갑게 다가오는 미영이를 그동안 얽어매고 있고, 힘겹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차 안에서 미영이와 함께 기도했다.
“하나님, 오늘은 참 안 좋은 일로 미영이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일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미영이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오늘 밤, 성령 하나님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나는 미영이를 데리고 미영이의 집으로 향했다.
좋은 집에서 살아요
미영이는 부모님에게 오늘의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과 한 달 전에 술로 인해 또 한 번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이 녀석이 파출소에서 나오려고 나를 이용하는 건가, 반성의 뜻이 전혀 없이, 상습적인가~’하는 여러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미리 아이들의 행위를 보면서 결론을 짐작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찾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아이들을 정죄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차를 학교 근처에 세우고, 미영이의 집까지 약 4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영이는 부모님과 대화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것은 부모님 다 좋은 직장의 중직에 있었는데, 외부의 일이 많아서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는 관심을 표현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사춘기를 경험하는 중학생 때 미영이는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그 때 시간 관념이 깨어졌다. 하긴 미영이는 집에 돌아가도 자기보다 더 늦게 들어오시는 부모님이니까 집에 있고픈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점점 미영이는 밖에서의 생활이 습관화 되어 갔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나이인지라, 낮이나 밤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것이다.
미영이의 집은 무척 좋았다. 주상 복합 아파트인데 부유층들이 사는 꽤 알려진 아파트였다.
“부모님이 들어오셨을까?”
이렇게 물어본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를 훨씬 넘고 있었다. 미영이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닐 거예요~. 저의 집은 거의 이런 걸요.”
나는 마음 한 쪽에 아픔을 느끼며 아파트 입구에서 미영이를 붙잡고 축복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미영아, 편히 자렴. 그리고 오늘 일은 선생님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아니, 한편으로 네가 선생님을 찾아주어 기쁘구나. 조금씩이라도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지면 그걸로 된 거니까, 희망을 가지고 내일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자. 응?”
미영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미영이는 평소처럼 내 품 안에 살짝 안기더니, 손을 흔들고 입구로 들어갔다.
“감사해요~ 쌤.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