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날의 사건
작성자
최*하
작성일
15.07.25
조회수
1581

생일 날의 사건
 
생일이예요
나의 생일. 2015년 4월 13일(음력 2월 25일).
생일을 맞이하기까지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아침 감사 기도를 드렸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영훈고 3-14, 49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월요일. 나는 나의 생일을 맞이하여, 마음 속에 한 가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생일 빵’을 사주어야겠다고. 아이들은 ‘생일빵’의 의미를, 생일을 기념해 한 대씩 때리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나는 진짜 ‘생일을 맞이한 빵’을 돌리는 ‘생일 빵’을 생각한 것이다. 먹을 것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들인지라, 빵을 먹으며 즐거워할 아이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라, 내가 먼저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반은 좀 특별한 학급이다. 모두 49명인데, 34명의 아이들은 직업위탁생으로 월요일에만 영훈고 우리반으로 오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직업위탁 과정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는다. 이 아이들은 내가 담임이지만,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방과 후에 따로 만나거나 전화를 통해 계속 만나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직업학교도 갈 수 없었고, 또 공부에 대해서도 열정이 부족한 아이들, 꿈과 비전을 아직 찾지 못한 아이들, 대학 가기 어려운 성적의 아이들, 15명이 영훈고 3-14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고 있어요
아침 8시에 조회를 하러 교실에 가면 한 명 또는 두 명이 도착해 있다. 그때부터 나는 종일 출석 확인을 해야만 한다.
“어디 쯤이니?”
“오고 있는 거니?”
쉴 새 없이 문자와 카톡, 그리고 전화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아이들과 대화를 한다. 아이들은 대체로 바로바로 응답을 준다.
“늦잠요~.”
“깼다가 잤어요ㅜㅜ”
“쌤~, 가는 길예요.”
이렇게 하루 종일 출석 체크를 하고, 또 쉬는 시간마다 교실로 올라간다. 아이들이 왔나 확인을 하는 이유도 있지만, 아이들의 생활 속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는 마음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내가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 눈치다.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고, 진심으로 대화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만지시는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아침에 청소를 해요
보통 종례를 마치고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학급의 모습이지만, 우리 반은 아침에 청소를 한다. 나는 아침에 항상 청소를 하고, 회장 승윤이나, 또 한 명 아이 정도가 같이 한다. 그 때까지 아이들 대부분이 등교 전이기 때문이다.
생일 아침에도 나는 빗자루를 들었다. 그리고 두어 명 있는 교실 공간에서 혼자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온 진(가명)이는 내가 청소하고 있는 옆에서 거울을 보며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다.
“진이야, 발 잠깐~~”
하면 진이는 발만 살짝 든다. 그리고 하던 화장을 계속 한다.
이윽고, 혁이(가명)가 빗자루를 들었다. 그리고 한 쪽 분단 앞에서부터 쓸기 시작했다. 선생님 혼자 청소하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인 것 같다. 혁이가 청소하는 것이 내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혁이가 움직인 것이 고마워 “고맙다.”고 하며 청소를 계속 했다.
그리고 한 가득 나온 쓰레기와 휴지 등을 다 모아 한껏 내 가슴에 안았다. 내 머리보다 올라간 휴지통을 들고 5층 교실에서부터 1층 폐휴지 처리장까지 낑낑대고 날랐다.
나를 지켜보는 우리 아이들 중 나를 따라오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때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화도 나지 않았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나지 않아요
그 까닭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많지 않다.
조부모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 8명, 편부 편모가 20명이다. 그리고 한 명은 두 동생과 생활하고 있는 소년 가장이다. 생리 불순 및 하혈증과 모야모야병, 우울증, 겜중독 등, 여러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밤에 알바를 하고, 직업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없는 무기력증과, 나는 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 사고, 그리고 게으름까지 겹쳐진 아이들의 총집결체다.
우리 반 남녀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이 술과 담배를 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지칭했던가? 그러나 나는 이 아이들을 문제아로 볼 수 없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이렇게 살기를 원하며 지내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어른의 문제와 어른들의 상황의 문제가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살도록 내모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어려서부터 우리 아이들은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피해자로 전락해 버린 꼴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특별히 내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기도하는 교사라면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까? 어떤 자세로 아이들을 대해야 할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나의 결론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최대한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삶에 대해 비판과 정죄 이전에, 그 아이들이 사는 현실적 삶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십 여 년간 청소년들과 만나오며, 음주와 성관계와 절도와 정신적 육체적인 병 등 온갖 질병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힘들어했던 여러 제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힘들게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이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며 나에게 붙여주신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내가 곧 예수님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사랑의 실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지속적인 기도 제목은 ‘작은 예수’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눈높이를 맞추셨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셨다. 세리와도 그러했고, 많은 병자들의 마음도 읽으셨다. 그 지혜의 마음과 소통의 방법이 나에게 절실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도한다.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그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작은 예수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축하 노래 없는 생일
청소를 다 마치고 승윤이를 불렀다. 그리고 5만원을 주며 매점에 가서 빵을 우리 반 인원 수 만큼 49개 사오라고 했다. 부회장 재훈이도 동행했다. 이윽고 승윤이와 재훈이가 빵을 박스로 들고 왔다. 그런데 주문하지 않았던 비타500 몇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니?”
승윤이가 대답했다.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하시던데요. 축하한다고 하시면서. 아이들에게 한 개씩 주라고 하셨어요.”
매점의 아주머니께서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쓰시니 참 감사했다. 아이들은 빵과 비타500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뭐야?”
나는 학급 단톡방에다 이렇게 올렸다.
“이 빵은 오늘 샘 생일빵♥♥♥”
아이들은 댓글로 나를 축하했다.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축하합니다.”
“와아아아아”
“사랑합니다.”
나는 이 때 쯤이면 생일 축하 노래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 앞에 놓여진 빵을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한 아이가 외쳤다.
“선생님, 안 온 애꺼 하나 더 먹어도 되나요?”
나는 당황, 황당 그러나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응, 아예 결석을 하면 먹어도 되지만, 좀 늦게 올지 모르니까 오전만 지나보고. 그리고 승윤이는 남는 것 가지고 있다가 아이들 오는 대로 주도록 하렴.”
결국 나는 생일 빵을 베풀고, 생일 축하 노래 한 곡도 듣지 못한 그런 생일 날 아침을 보내야만 했다.
 
생일 날의 사건
어쨌든 그렇게 오전과 오후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 나는 우리 반 옆 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수업 종료 10분 전 쯤이었을까? 갑자기 우리 반 여자 아이들 두세 명이 교실 밖 창 밖에서 나를 불렀다.
“선생님, 빨리요. 빨리요.”
나는 황급히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는 동시에 물었다.
“왜?”
“싸움 났어요.”
나는 대답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우리 반 뒷문을 왈칵 열었다. 그 때, 내 눈앞에는 믿기 힘든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희와 훈이가 서로 멱살을 붙잡고 씩씩대고 있었고, 윤선생님께서 아이들 사이에서 말리고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이 덩치 큰 아이들 사이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하고 훈이~, 팔 내려 놔.”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아이들 눈빛이 사그러드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희가 남자의 그 공격성을 이기지 못하고 외쳤다.
“선생님, 저 자식은 좀 맞아야 돼요.”
그 얘기를 듣고 있는 훈이도 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훈이를 데리고 먼저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훈이가 밖에 나간 사이, 희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 듯했다.
윤선생님께서 수업 종료를 거의 앞두고 쉼의 시간을 주었는데, 희와 훈이가 sns를 통해 의견 차이가 생겨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약이 오른 훈이가 희의 머리를 건드리고, 이어서 다툼이 생겼다는 것이다. 당황했던 윤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말리던 중이었다.
나는 아침에 가졌던 마음을 옷깃을 여미듯이 다시금 저며야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아이들을 순간적 감정으로 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한 번의 인내가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통해 이 아이들에게 일하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인도하소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 거하여주옵소서. 제 마음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선생님, 생신 축하해요
그때였다. 옆에 있던 미가 작은 케잌을 내밀었다. 생일 케잌이었다. 어수선한 가운데, 케잌을 받을 수도,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미는 책상 위에 케잌을 올려놓았다.
“선생님, 생신 축하해요~.”
그 말에 나는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아이들은 내 생일을 종례 때 축하하기 위해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돌발 상황이 발생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기도한 후, 돌려보냈다. 희도 훈이도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집으로 돌아갔다.
방과 후에 학교 앞 영훈센타에서 가스펠반 제자들과 기도회를 했다. 아이들이 나를 위해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고마워, 얘들아. 그런데 선생님 위해서 한 번 기도해다오. 선생님이 기도가 많이 필요해. 가능하지?”
아이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기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믿고 따를게요
그리고 그날 밤, 자정이 다 되었을 무렵에, 희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선생님, 오늘 죄송합니다.”
답장을 보냈다.
“아직 안 자는구나~.”
“네. 선생님.”
문자 속에 희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했다. 싸움을 했으니 이제 벌 받을 일만 남았다는 생각. 그리고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 등. 문자가 또 들어왔다.
“선생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너희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생일날이 되었어. 그런데 너는 앞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거니?”
희는 바로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네, 그럼요~. 선생님.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요. 진짜예요.”
“그래, 그렇다면 선생님 믿고 잘 따라오겠니?”
“어떻게 하는 건데요?”
“일단 믿고 따라오겠니?”
희는 선뜻 대답했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할게요. 선생님 믿고 따를게요.”
 
특별한 학급이야
다음 날, 희와 훈이가 윤선생님을 찾아갔다. 운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시고 격려하셨다. 그리고 용서해주셨다. 무엇보다도 두 아이가 바로 화해를 하고 또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윤선생님도 그것을 기쁘게 보셨던 것 같다. 윤선생님과 이야기를 마친 두 아이를 만났다.
나는 희와 훈이를 앞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들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
아이들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다.
“네, 선생님.”
“사람은 결심을 했다가도 또 무너지고, 무언가 새롭게 하려고 해도 옛날 습관이 다시 살아나고 그러거든.”
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맞아요. 선생님. 제가 욱하는 성격이 있거든요. 제가 그게 잘못된 걸 아는데 잘 안 고쳐져요. 이제 포기했구요. 그리고 일찍 일어나려고 해도 안돼요. 밤에 알바 끝나면 너무 피곤해요. 그리고 앞으로 뭘 할지도 걱정은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너희들 앞에 선생님 같은 사람이 있는거야. 과거는 어떻게 되었든 이미 지난거니까 현재와 앞으로가 중요한 거야. 그리고 너희들 알고 있니? 우리 반 내가 원해서 맡은 거말야.”
 
변화된 인생을 원하니?
훈이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예요?”
나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작년에 내가 학교 측에다가 가장 학교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 모아주면 감당하겠다고 했거든. 그랬더니 금년 직업반하고 너희들 합해서 49명 만들어준거 아냐. 전국에 이런 학급이 또 있나 몰라~. 하하하.”
나의 이 말에 두 아이들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이야기는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격려하며 말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너희들 앞이 안 보일 것 같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 오직 그 길 밖에 없단다. 세상의 다른 방법으로 행복하게 살려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예수님을 만난 인생은 영원토록 변화된 인생으로 살 수 있거든. 너희들에게는 지금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고, 또 그 시점이 매우 중요한 거야.”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선생님을 만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 들지 않니? 지금 시간도 그냥 일 년 지나고 마는, 그래서 졸업하고 마는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 변화된 인생으로 나아가는 그 시점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생활이 반복되거나 더 나빠지는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아이들의 눈빛은 보통 청소년들과 같은 눈빛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너희들이 어떻게 해도 포기하지 않아. 우리 반 거의 담배 피고 화장하고 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라기보다는 너희들의 마음이야. 마음이 변하면 행동은 따라 변하는 것이니까 말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예수님께서 안아주시듯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아이들과 내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거하셔서 꼭 변화시켜 주시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의 두 손을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사랑하는 우리 제자들을 축복하여주옵소서. 지금까지 어떠한 인생을 살았던 지금부터 앞으로의 인생이 하나님으로 인해 변화된 인생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또한 부족한 저를 담임교사로 만나게 하셨는데, 제가 조금도 포기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여서 우리 아이들의 외적인 면을 보고 교육하는 교사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만져갈 수 있는 제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께서만이 우리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또한 책임지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우리 아이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게 하여주시고, 꼭 멋지게 변화된 인생 되게 하여주옵소서. 좋지 않은 습관들은 다 정리되게 하여주옵소서. 새로운 습관 좋은 습관으로 변화되게 하여주옵소서. 안 좋은 일로 만났지만, 좋은 것으로 해결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기도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느덧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간헐적인 기도의 끊어짐과 연속, 그렇게 나는 그냥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였다. 그리고 기도를 마쳤을 때 형언할 수 없는 평강이 나와 우리 아이들을 휘감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 때 두 아이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는 미소를 띠며 두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들은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을 보며 잠시 당황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상태로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었다.
아빠가 아들을 안아주듯이, 예수님께서 힘든 우리를 안아주시듯이.
 
 
이 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 아이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전하는데 제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이 아이들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생으로 변화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저를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샬롬!
영훈고에서 울보선생 최관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