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갔다 하는 아이들
작성자
최*하
작성일
15.07.25
조회수
1659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
 
1.
점심 시간. 교무실에서 여러 일들을 분주히 하는 중이었다.
훈이가 내 옆 자리에 와 서 있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훈이는 말이 별로 없는 그리고 조용히 생활하는 아이였다.
“아~ 훈아. 왔구나. 무슨 일이니?”
나는 아이들을 만나면 먼저 미소를 띤다. 그것은 아이가 마음에 담겨진 이야기를 편안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훈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머리가 아파서요. 바람 좀 쐬고 오면 안될까요?”
“바람? 되고말고~. 다녀오렴.”
“정말요? 그럼~ 외출증요.”
나는 훈이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바람이 목적이 아니었다. 바람은 교정에도 얼마든지 불고 있고, 쐴 수 있는 것인데, 훈이가 원하는 것은 밖에 외출해서 나갔다 오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훈아, 너~, 그거 맞지? 점심 먹은 후니까, 못 참을 것 같은거! 그거 말야.”
훈이는 화들짝 놀랐다.
“아! 선생님. 아셨어요? 어떻게 알지? 네~”
나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네가 아무리 돌려말해도 네 표정과 말투가 이미 다 알려주고 있는데. 하하하.”
 
훈이는 담배를 하루에 반 갑 이상 피는 아이다.
고3이 되어서 그 정도면 끊기도 어려울 성 싶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한다고 다 들어주거나, 도움을 주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는 일이 있다. 이번 경우가 그러했다.
이 때 나와 같은 청소년들을 양육하는 믿음의 어른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인내는 소망을 낳고 소망은 결실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입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또한 나와 같은 믿음의 어른들은 아이가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훈이는 그날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한 시간 가량의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훈이는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힘겨움과 염려, 두려움, 불안함, 그리고 소원하는 일 등 여러 가지를 토해 놓고 있었다. 편안히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훈이는 나와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은 안 피워도 될 것 같아요. 속이 시원해요. 다음에 다시 찾아올게요.”
 
 
2.
준이는 학교에 오기가 어렵다. 거의 친구 집에서 잔다.
밤 늦도록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논다. 그리고 새벽에 잠이 들거나, 밤을 새기도 한다. 준이에게는 학교가 졸업장을 얻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한 달 간 무단 결석이 거의 열흘에 가깝다. 결석을 하지 않는 날은 지각을 하거나 말없이 사라진다. 무단 조퇴다. 준이는 표류하는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준이는 나와 통화를 잘한다. 그리고 말도 멋지게 한다. 능글능글할 정도로.
“선생님, 다음 주부터는 지각도 안하고 열심히 다닐 겁니다. 믿어주세요.”
“선생님, 오늘은 꼭 가려고 했었는데, 죄송합니다. 내일은 꼭 갈 겁니다.”
나는 한 달간 준이의 말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믿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준이가 만나온 많은 어른들이 믿어주다가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어른들의 마음을 나도 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빨리 내 앞에서 확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노력이 얼마나 허무하다고 생각이 들었을까.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끝까지 자기를 믿어주고, 포기하지 않는 어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끝까지 믿어주고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준이는 우리반 전체 회식을 할 때 잠깐 나타났다. 고기를 있는 힘껏 먹고 그 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또 안 오고 있다.
오늘도 문자가 들어왔다.
“선생님, 오늘 금요일이니까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꼭 나갈거예요. 지각 안하고요. 믿어주세요.”
오늘 아침 청소하던 중, 준이 책상 아래 굴러다니는 엽서를 주웠다. 이미 먼지가 묻어 더러워졌다. 그것은 내가 준이에게 써준 엽서였다.
“사랑하는 준이의 삶에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시고, 인도하실거야. 힘내렴. 기도하는 울보선생이.”
엽서 한 장도 챙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표류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준이. 엽서를 버렸다는 것에 대한 노여움이나 서운함보다, 준이의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된다는 확신을 더욱 갖게하셔서, 나는 청소를 하다말고 엽서를 손에 든 상태로 잠시 기도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준이를 믿고 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준이를 돌보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의 갈피를 잡기도 어려운 준이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현상을 잘 살피고 돌보는 지혜가 나에게 더욱 필요하다. 끊임없이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준이를 위해 오늘도 하나님 앞에 무뤂을 꿇는다.
 
3.
수는 엄마와 언니와 산다. 아빠는 엄마하고 자기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혼했다. 언니는 엄마 편, 자기는 혼자라고 외친다.
엄마는 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수는 말한다. 아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느냐 하는 것보다, 아이를 파악하는 데는 아이의 말이 참고가 될 수 있기에 나는 집중해서 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수는 많이 아프다. 여성으로서의 생리 불순도 심하고, 스트레스도 있고, 무엇보다 분노가 가득 차 있어 폭발하면 자기를 제어하기 어렵다.
결석과 지각이 잦아지는 중에 수는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나는 수의 어머니께 문자를 넣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수가 학교를 오지 않았고, 또 연락도 되지 않아 염려가 되니, 확인을 부탁한다는 문자였다.
약 5분 후, 희한한 문자가 내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너는 꼭 이런 문자를 받게 해!!!!!”
“좀 제 시간에 갈 수 없어!!!!!!!”
“삼학년이 됐으면 좀 가끔 지각을 하던지.”
그리고 잠시 후 이런 문자가 이어졌다.
“아휴, 죄송해요. 제가 수한테 보낸다는게 앞으론 신경 써서 지각 안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이 문자를 보면서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수의 엄마가 잘못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수가 자기 엄마와의 관계가 어떠한지 파악하는 계기가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의 스트레스와 건강, 그리고 학교 등교에 대한 불성실, 학교 생활의 무의미 등에는 ‘엄마와의 관계 회복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 표류하는 아이들을 나에게 붙여주어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섬기며 이 아이들을 결국 변화시킬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참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지금도 이 아이들을 붙잡고 기도한다.
 
“사랑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그 사랑의 마음을 저에게 가득 넘치게 부어주소서.”
 
이 아이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 아이들을 제가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영훈고에서 울보선생 최관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