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꼭 한 번만 안아주셔요
다양한 아이들
영훈고의 특별한 학급.
인원 45명. 학급 구성원이 더 늘어날 전망인 분주한 신학기의 나날들을 지나고 있다. 이중 33명은 직업위탁생들인지라, 월요일에만 영훈고에 나오고 12명은 계속 수업을 받고 있다.
직업반인 아이들은 요리, 미용, 바리스타, 자동차 튜닝, 항공 등의 다양한 직업과 연결되는 지라, 각 직업학교로 움직인다. 그러나 일반 생활교양반 아이들은 비전과 꿈을 발견 못한 아이들, 성적이 여의치 않은 아이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또한 본인들이 신청을 해서 온 것인지라, 12명이 생활하는 것에 대해 누구를 탓할 성질도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
아이들은 한 마디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아침 8시에 학급 조회를 할 때는 한두 명이 와 있다. 그리고 나는 하루 종일 아이들이 학교에 온 것을 체크해야 한다.
이 아이들을 놓고 매일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조급하지 말라는 마음을 주셨다. 결국은 변화될 아이들이기에, 지금의 모습을 보며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내 가운데 소망이 있는 법. 너무 급한 마음은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박히시며 길이 참으심의 인내심을 가지고 사역하셨던 것처럼, 바로 그 인내의 마음이 있어야 하리라 다짐하며, 매일 기도 가운데 소망을 품고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서로 대화하며
학교에 등교하는 생활반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각 직업위탁 학교로 흩어져 있는 아이들도 돌봐야 한다. 십여 개로 흩어져 있는 아이들을 살피기 위해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아이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직업위탁생들은 월요일만 영훈고에 와서 4교시까지 하고 가기 때문에, 그 때는 꼭 만나야 할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상담을 했다. 그리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몇 명씩을 기억하며 집중 기도하고 전화를 걸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내 전화를 기쁘게 받아주었다. 혹시 전화를 바로 받지 못했을 때는, 아이들이 확인 후 바로 전화를 해왔다. 아이들과 통화하고 대화를 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은 정말 복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한다.
피부미용사 지영이
지영이는 피부 미용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네일아트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처음에 나와 대화를 나눌 때 지영이는 매우 기쁘고 즐겁게 대화에 임했다. 남자친구 얘기도 잘했고, 또 늦둥이라고 하며 어린 여동생의 얘기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해서도 쾌활하게 말했다. 나는 지영이와 나누는 대화가 매우 즐거웠다.
우리 아이들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워한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어떤 일을 소개하거나 권면할 수는 있지만, 강요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선택을 맡겨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자기가 선택한 일에 대해서 기쁘고 즐겁게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 와 있는 33명의 아이들이 그러한 아이들이다. 모두 대학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자기에게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하는 아이들. 지영이는 바로 자기가 선택한 일에 대해서 매우 즐거워하는 아이중 한 명이었다.
힘들어요 선생님
지영이와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로 지영이의 목소리가 풀이 죽어 있었다.
“지영아, 무슨 일 있니? 왜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힘들어서요, 선생님.”
“아~ 무슨 힘든 일이 있었나 보구나.”
지영이는 계속 같은 톤의 음색으로 말했다.
“네, 선생님. 재미도 있는데요. 힘이 드네요.”
“그렇구나, 영훈고에 와서 생활하는 것보다 힘이 드는구나.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
“네, 영훈고에서는 작년까지 그냥 편하게만 생활했는데, 여기는 조금만 늦으면 지각 체크하고, 지각 세 번 하면 결석이고, 또 늦는 아이들한테 복교 시킨다고 협박하고, 좀 무섭기도 해요.”
“하하하, 그렇구나. 그래도 지영이는 늦거나 결석하지는 않잖아? 지영이 네가 너무 바쁘게 생활해서 그런 말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선생님 꿀피부예요
그 때 지영이의 목소리가 다소 밝아지는 듯 했다.
“네, 맞아요. 선생님. 어쩌면 제 마음을 그렇게 잘 아세요?”
“하하하. 지영이가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좋은데~”
어느덧 지영이의 목소리는 예전의 밝은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선생님,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참 좋아요. 어떤 얘기를 해도 맘이 편해요.”
“그래, 나도 참 좋다. 너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 나중에 피부미용사 되면 내 피부도 좀 봐다오.”
지영이는 이제 아예 깔깔거리고 있었다.
“네, 선생님. 당연하죠. 그런데 선생님 피부는 완전 꿀피부예요~. 저보다 더 좋아요.”
“그러니? 하하하.”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대화했다. 대화를 마무리 하던 중 지영이의 목소리가 자못 진지하다고 느껴졌다. 지영이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근데요~. 다음 월요일에 학교 갈 때요. 저 꼭 한 번만 안아주셔요. 꼭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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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운 십대의 성장통을 경험하는 우리 아이들을 만날 때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어야 할 필요성을 갖습니다. 또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본인이 판단한 것을 격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자기의 삶에 고민을 안고, 그 누구보다 많은 염려를 가지고 사는 아이들인지라 그 마음을 읽으면서 더욱 기도해야겠습니다.
자기를 안아달라는 지영이의 그 말이 제 귓가에 계속 맴도는 것은, 어른들이 자기와 같은 청소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사랑해달라는 마음이리라 여겨집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위해, 그리고 제가 감당하는 45명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영훈고에서 울보선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