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전 축복 엽서를 쓰고
팔이 불편해요
여름 방학 전부터 학교의 헬스장(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했다.
영훈의 제자가 후배 교사로 금년에 부임해 왔는데, 트레이너 출신이라면서 몇 선생님들과 함께 운동을 하자고 했다. 나는 사람들의 말에 비교적 순종적이라 좋다고 하며 두세 달을 함께 했다.
그리고 8월말 개학 직후, 그 날은 운동이 과했던지, 아니면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나의 팔에 무리가 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오른팔이 불편하다. 옷걸이에 옷을 꺼내기도, 땅바닥에 무엇을 줍기도 어렵고, 사실 아이들과 허깅을 하기도 좀 어렵다. 약간의 통증이 있기 때문이다. 수업을 할 때 칠판에 무엇을 쓸 때도 사실 불편함이 있다. 제자들은 이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강의나 집회를 인도할 때는 기도하며 나아가고 있다. 요즘 하루에 한 시간씩 물리치료를 받는 날이 계속 되고 있다.
수능 일주일 전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제가 팔이 아파서 금년에는 고3 수험생 제자들에게 예전처럼 일일이 편지를 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한 장만 써서 복사하고, 돌리는 것으로 아이들을 격려할까 합니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하나님께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지 않고 내 생각을 정한 다음에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것, 또는 타협하려는 자세는 얼마나 불신앙적인 자세인가. 하지만 그 때 그 정도로 팔이 불편했고, 또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학교 앞 영훈센터에 수능 격려 현수막을 내다 걸었다. 그 현수막을 달 때도 팔을 몇 번이나 주물러야 했다. 사실 동료 선생님께 부탁할까 했는데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현수막 문구는 이렇다.
“영훈 제자들아, 스릉흔드~, 아는 것 다 생각나게, 찍는 것 다 정답 되게, 기도 팍팍!”
아이들은 이 작은 글귀에도 감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전라도 광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수험생 제자들에게 격려의 글을 카톡으로 보냈다.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생각나게 하시고 또 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수능 사흘 전 수연이가 나를 찾아왔다.
딸처럼 아끼는 수연이가 어느 덧 고3이 되었고, 이번에 입시를 본다. 수시 넣은 것이 예비 몇 순위로 있다는 사실에 수연이는 너무 안타까워하고 불안해했다. 교무실로 찾아온 수연이는 울상이 되어 있었고, 그 큰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선생님, 너무 불안해요. 저 어떡하면 좋아요. 수시 안 되면 안 된단 말예요. 수능은 정말 자신 없구요...”
교무실에서 수연이를 붙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용기를 주세요. 수연이에게 힘을 주세요. 수연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인 것 수연이가 잘 알고 있답니다. 두렵고 떨리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끝까지 수연이를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축복의 엽서를 쓰며
수연이를 보내고 기록보존실로 내려와 잠시 홀로 기도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은 이러했다.
“아이들에게 격려 엽서를 써라, 수연이처럼 두려워하고 힘겨워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지 않느냐? 그 아이들에게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느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셨고, 또 게으름을 책망하고 계셨다. 내가 팔이 아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순종할 수 없는 이유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훈고에 수연이처럼 힘겨워 하는 아이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그 아이들은 힘을 얻고 또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통해 격려하여 주실 텐데, 나의 게으름과 여건 때문에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했다. 그리고 이윽고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와의 과거의 나눔을 기억하며 아이의 비전과 꿈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구하기를 소망하며 엽서를 썼다.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좋은 기도의 방법이다. 누군가를 위해 엽서를 쓰며 기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도가 이론이 아닌 것처럼, 사랑의 표현은 꼭 있어야 하는 법. 그렇게 약 200통의 엽서를 썼다.
초컬릿 600개를 사고
팔은 아팠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리라 믿었다. 바로 수능 이틀 전 아침까지 그 엽서를 다 썼다.
그런데 그 날 아침, 매년 학부모들이 중심이 되어서 고3 수험생들에게 돌리던 떡이나 선물 등을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학교로부터 들었다. 영훈학원이 금년에 교육청 감사를 통해 어려움을 겪고, 특히 학부모들의 돈과 관련한 일 등등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어쩌나, 아이들이 서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 또 기도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바로 내 마음을 움직이셔서 학교 근처 대형마트로 달려가게 했다.
아침 9시 30분에 나는 600명 가량의 사람들이 먹을 정도의 미니 초컬릿을 샀다. 그리고 박스에 넣어 포장을 해서 들고, 학교로 뛰다시피 돌아왔다. 팔이 아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서 학교로 가서 포장을 각 반별로 해야된다는 생각만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감동을 전하고
아이들 전체에게 쓴 편지 복사한 것과, 개인 격려 엽서, 그리고 초컬릿을 각 반 별로 봉투에 나눠 담았다. 봉투는 모두 15개, 14개 학급과 선생님들에게 드릴 것까지 챙겼다. 그리고 고3 제자 두 명과 함께 점심 시간을 이용해 고3 학급을 방문하였다.
“얘들아! 큰 것은 아니지만, 이것 먹고, 편지 읽어보고 파이팅, 뒤에서 열심히 기도할게. 수능 대박! 홧띵!”
아이들은 “와! 감사해요~”하고 소리쳤다.
15분 동안 14개 고3 학급을 모두 돌고, 교무실 자리로 와 앉으니,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가득 내 가슴속에 차 올랐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상황과 여건을 먼저 염려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 마음으로 순종할 때는 자기 자신에게 무척 귀한 감사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셨다.
그 때 문자가 들어왔다. 3학년 여학생 은지의 문자였다.
“잘 받았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동했어요.”
나는 답문자로 이렇게 말했다.
“작은 것에 감동할 줄 아는 은지, 은지는 바로 천사란다!”
사랑하는 제자를 통해, 그리고 기도 가운데 음성을 들려주시고, 작은 것으로 순종하게 하시며 큰 기쁨과 감사를 주시는 하나님을 이 시간 찬양합니다. 제자들아! 홧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