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편을 잡고 학교에 들어섰을 때는 오직 열정 하나만 가지고 덤벼들었다. 학생들의 심리적인 상태가 어떤지 저들의 환경이 어떤지 저들의 꿈은 무엇인지 그저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했다. 그렇게 살아 온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전쟁이었고 온통 불만투성이였다. 왜 그리 문제학생들만 눈에 띄는 지 버릇없고 돼 먹지 못한 놈들에 대한 불만으로 매를 들 때가 많았고 사랑의 매보다는 버릇없는 녀석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수업 시간 중에도 잘 하고 있는 학생보다는 그 많은 학생 중에 유독 문제 학생들만 눈에 밟혀서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하나같이 버릇이 없어.”라고 푸념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체벌을 가했고 학생들은 그렇게 맞고도 도무지 그 버릇을 고치지 않았고 심지어는 반항하기까지 했다. 그럴수록 체벌의 빈도는 잦아졌다. 돌이켜보면 교직생활 10년 동안 나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에 분노만 키워 간 것이었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녀석들은 하나같이 문제라고 하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막상 부모님께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보면 나 역시도 문제투성이였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 뻔한 일인데도 말이다.
사실 세계최초의 문명인 슈메르 문명을 기록한 점토판 설형문자에도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하니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 후 나의 교직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학생들이 제자로 보였고 인격체로 보였다. 그리고 저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졌다. 그리고 학생들을 분노의 감정을 가지지 않고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학생을 만나도 분노의 감정을 갖지 않고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득이하게 체벌할 때에도 녀석들은 나의 마음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그리고 벌을 받아도 순순히 받아들였고 일시나마 자신의 행동을 고쳐나가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내가 변하게 된 것은 바로 2명의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제자 민성이와 성규때문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민성이와 성규는 분명 나의 훌륭한 스승이었다.
민성이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학생이었다. 늘 말이 없었고 혼자서 지내는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그 때 나는 학급 학생들에게 2가지를 주문했다. 우리 반은 1년간 지각, 조퇴, 결과 없는 전출 학급과 성적향상 학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리가 부러져도 학교에 와야 하고 성적이 떨어진 학생은 사유서를 제출하고 그 이유가 정당하지 않았을 때는 벌 청소를 시켰다. 왜냐하면 학생이면 누구나 근면 성실해야할 의무가 있기에 마땅히 그것을 어겼을 경우에는 어떠한 처벌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다. 그런데 가장 먼저 나의 규칙을 어긴 녀석이 나왔다. 바로 민성이었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각한 민성이를 앞으로 불러 세워놓고 학교에서 규칙을 어기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사회에 나가면 바로 인생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둥 일장 연설을 하고는 벌 청소를 시켰다. 그 뒤로부터 녀석은 지각 횟수가 잦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에게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골라서 꾸중했고 벌 청소의 부담도 가중시켰다. 그런데 녀석은 담임의 이야기나 벌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했다. 오히려 벌을 준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녀석의 무표정하면서도 비웃는 듯한 모습에 결국 나는 녀석에게 체벌을 가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녀석은 결석했다. 수업을 마치고 민성이의 집을 아는 학생을 앞세우고 녀석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선생님, 민성이 아버지 어머니 싸워서 부모들이 모두 집을 나갔어요.」
녀석의 집으로 가면서 친구 녀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녀석의 집은 철탄산 중턱 가파른 곳에 울타리도 없이 덩그러니 얹혀 있었다. 민성이를 불렀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문짝 아래 섬돌에는 녀석의 신발이 얹혀 있었다. 조용히 문을 열어 보았다. 방안은 곰팡이 냄새와 함께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안은 낮인데도 컴컴했다. 시간에 조금 흐르자 방 안에는 민성이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윗목에는 전기밥솥에 말라붙은 밥풀이 곰팡이에 슬어 있었다. 잦은 부부싸움으로 어머니가 가출해 버리자 몇 날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혼자서 마지막 남은 쌀로 밥을 해먹고 그 후로는 내내 굶어서 방 안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던 민성은 초점을 잃었고 무심히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며칠 전 내게 맞고는 무심하게 쳐다보던 그 눈빛이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고 코가 시큼거려왔다.
쌀과 반찬을 마련해서 도와주었으나 결국 민성이는 그 도움마저 거부하고 작년에 가출한 친구 따라 서울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민성이의 무심한 눈빛은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우쭐대고 교육자라고 자처하며 거들먹거렸던 나를 질책하는 눈빛이었다. 간혹 교직생활이 힘들어 질 때마다 나는 지금도 그 때 민성이의 눈빛을 떠올리곤 한다.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주차위반으로 벌금을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주 쳐 오던 하얀색 승용차가 갑자기 멈추면서 웬 젊은 녀석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갑작스레 불어난 자동차의 숫자처럼 인간들의 몰염치 부도덕을 경험해온 탓일 것이라 스스로 위로해 보았지만 그래도 나는 괜히 언짢았다.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곧추 도로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다가왔다.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하고 꾸벅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긴장한 내가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선생님 저 성규입니다.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성규 ?...」
「학창 시절 선생님 속 많이 썩였죠.」
녀석은 제법 의젓한 음성으로 엷은 미소를 띠면서도 연신 죄송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속을 썩이기는 그 시절에는 다 그런 거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성규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학생이었다. 그를 만났다는 반가움보다 그가 그렇게 깔끔하고 의젓하게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견디기 힘들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녀석,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도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녀석, 자취하고 있는 손자를 위해 뒷바라지 해준 할머니를 우습게 여기고 부모까지도 내 팽개친 녀석이었다. 친구 따라 서울까지 도망갔다가 1주일 만에 돌아온 녀석을 처벌하려 했지만, 다시는 도망가지 않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생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용서한 지 2주일 만에 도망 간 녀석이었다. 참을성도 없고 삶의 목적도 없고 도덕과 윤리와는 담을 쌓은 녀석으로 보였다.
학교 출근해서 아침에 녀석을 먼저 만나면 그날 하루 종일 재수가 없을 정도로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이 싫었고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한번은 학교에 안 다니겠다고 도망 간 녀석을 온 시내를 뒤져 찾아서는 중국집으로 데려가 자장면을 앞에 놓고 말을 꺼냈다.
「이제 선생님도 더 이상 네놈이 학교를 그만 두든 계속 다니든 상관 않겠다. 그러나 학교생활도 견디지 못하는 녀석이 어찌 그 험한 사회생활을 견디어 내겠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서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생활 잘 하도록 해라.」
사실 난 겉으로는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내심으론 그녀석이 도무지 인간 노릇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정신 못 차린 성규 녀석의 비참한 미래의 모습만 내 마음에 그려질 뿐이었다. 속된 말로 네가 잘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오늘 내 앞에 이렇게 버티고 서 있지 않은가?
「그래 요즘 뭘 하고 있냐?」
나는 의례적으로 물어 보았다.
「선생님, 저는 요즘 조그만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제법 자리가 잡혔습니다. 」
그의 얼굴에는 고생의 흔적과 함께 풍족한 기쁨까지 느껴졌다.
「 그래 잘됐구나! 집안 어른들은 잘 계시고?」
「 다 잘 계십니다. 그 동안 제가 선생님 속을 많이 썩여 들여서 죄송합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저를 퇴학시키지 않으시고 바로 인도해주신 덕분에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자네 요즘도 늦게 일어나나?」
나는 성규와 같은 종류의 학생은 선천적으로 게으름 병이 걸린 특이종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그가 사업을 한다고 하니 그것이 제일 궁금해서 물었다.
「선생님, 이 사업은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되고 맙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성공하게 된 것도 바로 선생님 덕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 ...... 」
「선생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스승의 날 꼭 댁에 인사드리겠습니다. 몸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선생님, 형도 선생님 이야기 많이 합니다. 그 때는 같이 찾아뵙겠습니다.」
몇 번이고 인사하며 떠나가는 성규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를 만난 이후 나는 아무리 문제가 많은 학생일지라도 그 학생이 변화되고 성장할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 어둡게 살아가는 학생들에게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신뢰와 따뜻한 애정으로 제자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 날 ‘성규의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다.
민성이와 성규는 나의 제자이다. 그리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의 스승이다.
백일기
소백산 아래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다(경북 영광고 교사)
소설가(문학세계), 교육평론가(교평문학)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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