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여고생
작성자
최*하
작성일
12.04.20
조회수
1702

자전거 타는 여고생

자전거 선물을 받고

화창한 봄날.

교정에는 화창한 날씨보다 더 활기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얼마 전 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꺼냈다. 연두색 빛이 나는 새 자전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배드민턴을 자전거 앞바구니에 넣고 자전거를 달렸다.

점심시간, 아이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을 보며 환호를 올렸다. 그것이 자기들의 선생님인 줄 알고는 더욱 재미있어 했다.

나는 자전거를 세워 놓고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했다.

참 희한한 것은 우리 아이들은 수업 시간 이외에는 항상 활기가 차 있는 것 같다. 유난히 금년의 아이들은 더욱 활력이 넘치는 것 같다. 남학생들은 믿음직스럽고 여학생들은 참 예쁘다. 내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아이들로 인해 학교생활은 참 행복할 수밖에 없다.

자전거와 배드민턴이 필요해요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치마를 입은 채로 자전거를 타는 미선이는 센스있게 무릎덮개를 사용했고, 흔들리면서도 비교적 잘 달리는 민진이도 즐거워했다. 여러 아이들이 자전거를 돌아가며 타는 것을 보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래, 자전거를 한 열 대 정도만 확보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점심시간 때 이렇게 운동장에서 타도 좋을 텐데...’ 그리고 또 이런 생각도 했다.

‘배드민턴도 30-40벌만 확보하면 두 학급 정도가 동시에 칠 수 있고...’

이런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나는 매우 행복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그 순간부터 기도하며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선생님 태워드릴게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뒤늦게 3학년 혜지가 나에게 달려왔다.

“선생님, 저도 자전거요, 자전거 탈래요.”

“그래, 민진이가 타고, 다음 번에 네가 타면 될 것 같은데...”

이윽고 혜지는 열심히 자전거를 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 모습에 나도 한껏 기분이 고무되었다.

한 바퀴 돌고 온 혜지.

“선생님, 타실래요?”

나를 보며 웃는 얼굴로 같이 타자는 권유를 하는 혜지.

“응? 정말? 나 태워주겠다고?”

“네, 선생님. 저 잘 타거든요.”

“그래~, 그런 것은 같은데...”

결국 나는 교직 생활 23년만에 사랑하는 제자, 여학생의 자전거 뒤에 타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스타킹 나갔어요

운동장을 스승과 제자가 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다. 나도 즐거웠지만 혜지는 더욱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운동장에 모여 있는 아이들이 박수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 때, 혜지의 자세가 불안해 보였다.

“혜지야, 자전거 흔들리는데... 천천히, 좌우로... 어! 어! 어!”

급기야 혜지와 나는 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자전거 앞 바퀴가 꺾여진 상태였다.

나는 괜찮았는데, 혜지가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혜지야, 다친 거야?”

혜지의 스타킹이 나가버렸다. 혜지는 앉은 상태로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쌤, 무릎이 까졌어요.”

웃을 상황은 아닌데 그 말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혜지를 부축해 일으키고 보건실로 가도록 했다.

자전거 타는 스승과 제자

쉬는 시간. 혜지의 교실로 향했다.

“혜지야, 괜찮은거야?”

“네, 선생님. 괜찮아요. 약 발랐고, 스타킹도 새 걸로 사 바꿨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혜지야, 다행이다. 오늘 선생님은 인생에서 정말 잊지 못할 날이 될거야. 난생 처음 예쁜 제자와 자전거 타고... 또 넘어지고... 다치고... 하하하.”

혜지도 깔깔대며 웃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자, 그럼 혜지 다친데 거기 무릎팎, 선생님이 한 번 붙잡고 기도할까?”

“네에?”

주위에 있던 아이들도 하하호호 하며 웃었다.

제자들과 함께 하며 웃을 수 있는 학교, 영훈고는 사랑이 가득 넘치는 학교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