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제자는 천사랍니다
반가운 손님
한낮의 오후.
학교에서 내가 사용하는 기록보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두 여학생이 서 있었다. 여느 여학생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더니 무척 수줍어했고, 심지어 부끄러워하기까지 했다. 나는 잠시였지만 이런 상황이 조금은 생소했다. 요즈음 여고생들은 매우 발랄하고 자기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때로는 무례하기까지 한데 이 아이들은 그 반대였다.
“응, 어서 와!”
내가 수업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나는 다정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는 이름을 물어보았다.
“저는 미정이구요, 얘는 여선이예요.”
2학년 여학생들이었다. 미정이와 여선이는 자신들이 찾아온 이유를 털어놓았다.
책을 빌려 읽었어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은비에게 주신 책 있잖아요. <울보선생의 울보아이들>요, 그것 저희도 다 읽었어요.”
내가 이 아이들에게 빌려준 적도 없었고, 또 선물한 적도 없었는데 그 책을 다 읽었다는 말에 나는 기뻐하며 말했다.
“그래, 은비에게 빌려 읽은 거니?”
“네 선생님.”
“야~ 참 반갑구나. 요즘에 너희처럼 이렇게 책을 빌려가면서 읽는 예쁜 여고생들이 있었다니, 참 기쁜걸.”
아이들도 손을 입가로 가져가며 깔깔대고 즐거워했다.
“아니예요, 선생님.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어서 왔어요.”
“그래? 어떤 부탁이니?‘
“선생님 내신 책을 다 읽고 싶어요.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무척 기쁜 마음으로 <울보선생>과 <꿈을 경영하는 청소년 리더십>을 빌려주었다.
짤막한 편지
한 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기록보존실 문앞에 편지가 있었다. 나는 문간에 서서 그 편지를 읽어보았다.
“최관하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0미정입니다. 저에게 <울보선생>과 <꿈을 경영하는 청소년 리더십> 두 권의 책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울보선생>을 읽으면서 근육병에 걸린 제자를 기도로 위로하고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바로 잡아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쯤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이 부분이 제 마음에 ’확‘ 와 닿았습니다. 제 머리맡에 이 글을 놓고 항상 새겨볼 것입니다. 좋은 책 빌려주셔서 감사하구요. <꿈을 경영하는 청소년 리더십> 읽고 또 한 번 편지하겠습니다. 미정 올림”
짤막한 편지에 도취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요즈음은 이렇게 펜으로 편지지나, 쪽지에 글을 잘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 무엇을 표현할 때 글을 쓰면 그 글에는 내용이상의 것이 담겨져 있을 때가 많은 법. 미정이는 그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마음에 더욱 감동하고 있었다.
시험 망쳤어요
미정이와 여선이는 거의 매일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선생님, 저희들이 할 일 없나요? 선생님 도와드릴 일요.”
나는 이 아이들의 마음에 천사가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정도로 순수하고 맑고 예쁜 소녀들이었다. 하루 날을 잡아 저녁밥을 사주었다.
그리고 영훈찬양제를 며칠 앞 둔 날, 기독학생들은 연습을 하러 갔고 나는 각 교실에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는 중이었다. 2학년 어느 반인가, 전등을 켰는데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면서 “선생님!”하고 외쳤다. 미정이와 여선이였다.
“아니? 너희들, 왜 깜깜한 교실에 이렇게들 있니? 불도 안 켜고...”
아이들은 힘없이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네~, 오늘 모의고사 망쳐서요. 우울해요. 선생님.”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며 이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구나, 하하, 선생님이 힘내라는 의미에서 기도 한 번 어때?”
“네 좋아요, 선생님.”
나는 아이들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얹고 기도했다.
“... 하나님께서 미정이와 여선이를 위로하여주시고, 새로운 힘을 부어주시옵소서. 다니엘과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와 명철을 우리 아이들에게 부어주시옵소서...”
선생님 저희가 할게요
기도를 마쳤을 때 아이들의 얼굴은 예의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퇴근 안 하시고 어쩐 일이세요?”
나는 찬양제 관련 포스터를 각 반에 붙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선생님, 도와드릴까요? 저희들 그런 것 잘 하는데...”
또 아이들의 천사같은 마음이 전해졌다. 진정으로 선생님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나는 도 한 번 감동을 받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포스터를 미정이와 여선이에게 넘겼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일을 하기 위해 기록보존실로 이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정이와 여선이를 나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으리라 믿었다. 예수님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 순백색의 도화지에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사랑을 그려내는 우리 아이들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져주시길 기도했다.
행복한 교사
찬양제 때에도 참석한 미정이와 여선이.
그리고 거의 매일 나를 찾아오는 이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교사가 된 것이 무척 기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쉬는 시간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사과를 깎아주며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교사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예수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하시니 더욱 감사하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게 하시니 더더욱 감사하다. 미정이와 여선이를 깊이깊이 만나주실 예수님, 그 사랑을 기대하며 지금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이 글을 쓴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속에서, 행복한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