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시와 결혼주례
작성자
최*하
작성일
11.11.22
조회수
1745

축시와 결혼 주례

십년 전 제자

“선생님, 오늘 꼭 찾아 뵙고 싶어요. 시간 괜찮으신가요?”

이 전화의 주인공은 고2 때 내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 혜선이(가명)다. 약속 시간을 정해놓고 불현듯 혜선이를 담임했던 때를 떠올렸다.

혜선이는 여고시절, 자궁근종이라는 병 때문에 많이 아팠다. 이것은 자궁종양으로 심각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혜선이는 항상 얼굴에 핏기가 없었고, 또 그 병 때문에 병원도 정기적으로 가서 검진을 받아야 했다. 혜선이는 부모님과 두 여동생 그리고 어린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더욱이 남동생은 뇌성마비 중증환자였다.

당시 혜선이 집에 가정방문을 갔을 때 나는 무척 놀랐었다. 지하 방 두 개, 그리고 주방이라고 할 수 없는, 가운데 통로에 즐비했던 그릇들, 매월 적지만 일정 금액을 돕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물

그 즈음 혜선이의 병이 점점 심해졌다.

수술비 2백만원을 모으고 있던 중, 혜선이의 아버지는 나의 요청에 의해 아버지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셨다. 하나님께서 만지고 계셨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술도 드시지 않은 상태의 아버지는 혜선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혜선아, 미안하다. 네가 이렇게 많이 아픈 것은 아빠 때문인 걸 알았어.”

눈물 흘리는 아빠에게 달려들어 혜선이는 엉엉 울었다. 더 이상 아빠에 대한 분노와 아픔의 눈물은 아니었다. 용서와 화해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혜선이를 위해 교회에 나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가정에서는 나에게 전적으로 혜선이를 맡겨주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 생각하니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족 전체가 힘들어하고 어려움에 있을 때 누군가의 격려가 필요하다. 그 격려는 인간적인 면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의 수고를 할 일이다. 나는 학교와 가정에서 혜준이와 이 가정을 놓고 기도하며 격려하였다.

하나님의 은혜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혜선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수술에 관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 의사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몸 속에 있던 자궁 종양 7센티미터가 1.5센티로 줄었습니다.”

나도 혜선이도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내 이것은 감사로 바뀌었다. 혜선이와 혜선이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착하고 여린 혜선이를 만져주신 하나님, 부족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렇게 혜선이는 수술을 하지 않고 치유되었고, 졸업 후 어린이집 교사를 하며 지내오고 있었다.

저 결혼해요

학교 앞 음식점에서 혜선이를 만났을 때 혜선이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얼굴이 좋아보이는구나. 잘 지낸 거니?‘

“네, 선생님...... 이거요.”

혜선이의 홍조빛 볼이 유난히 붉었다. 혜선이가 건네준 것은 청첩장이었다.

“결혼하는 거니?”

“네, 선생님... 다음 주예요.”

나는 하마터면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나님께 감사, 그리고 큰 기쁨을 주고 있는 혜선이가 무척 대견스러웠다.

“정말정말 축하한다. 축하해...”

혜선이의 고등학교 시절과 그 후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혜선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의 길로 들어섰고, 막내 남동생은 시설보호소에 맡겨졌다. 그것은 동생을 보살필 수 있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혜선이의 어머니는 온 몸을 사리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던 분이다. 여러 생각들이 순간 스쳐갔다.

축시와 주례

“선생님, 이번에 주례 선생님은 모시지 않고요, 그냥 아버님들이 한 말씀씩 하시는 걸로 계획을 세웠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예전에 약속하셨던 축시는 해주셨으면 해서요.”

혜선이가 고등학교 때 나는 학급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 한 편씩을 모두 전해주었다.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시 한 편씩을 써 준 것이다. 그 후 혜선이는 자기 결혼식 때 꼭 시를 읽어달라고 하곤 했었다.

“그래, 좋지. 결혼날짜, 시간이 언제니?”

아뿔싸, 주일 오후 2시였다. 교회에서 다른 일정이 걸려 있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보니 잠시 다녀올 시간이 확보되었다. 축시를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결혼식 하루 전날, 혜선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그 때 기차를 타고 대전에 강의가 있어 내려가는 길이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아무래도 주례 선생님을 모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이 해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아니면 결혼식장에 부탁을 해야 하는데...정말 죄송해요.”

주례를 서며

결국 나는 혜선이의 결혼 주례를 서게 되었다. 너무나 기뻤다.

몸이 아팠던 나의 제자,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이 가정을 구원해주시고, 또 그 아이의 결혼 주례까지 서게 하신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했다.

혜선이는 주례 부탁을 하는 마지막 말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선생님, 근데요. 주례 끝에 꼭 축시까지 이어서 해주셔야 해요.”

주례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몇 번 감사의 울음을 참아야 했다. 애써 눈물을 참아내며 진정 기쁨으로 주례를 했다. 두 사람만이 아닌 여기에 모인 모두가 축복의 자리에 왔으니 축복의 사람, 가정이 되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주례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축시를 낭송했다. 시간상 길지 않은 주례와, 축시. 하객들의 얼굴은 행복했고 특히 신랑과 신부 혜선이는 너무 기뻐했다.

혜선이를 만나주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시며 가정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혜선이와 이 가정을 인도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