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저 자신으로 봐주어 감사해요
특대생 미영이
교무실 책상 위에 자그마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0학년 0반 서미영입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이번에 특대생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영훈고에는 학기별 가장 우수한 성적을 얻은 학생에게 주는 특대생 제도가 있다. 남녀공학인지라 남녀 각 한 명씩을 선발하여 시상하며 정해진 장학금을 준다. 이 상을 받는 학생은 큰 기쁨을 얻고 또한 명예를 얻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커진다. 가장 우수한 성적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기 때문이다.
미영이는 내가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학생이다. 그런데 특대생이 되었고 또 선생님들에게 돌린 작은 호두과자 한 상자를 받아든 순간, 미영이를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라 판단했다. 나는 이내 순종하는 마음으로 미영이에게 문자를 넣었다.
“... 미영아, 최관하 선생님인데 전화 주겠니?”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저녁 8시, 야간 자율학습 하는 중 쉬는 시간에 미영이는 나를 찾아왔다.
“미영아, 축하해. 특대생 된 것...”
왜 그런지 미영이는 경직되는 듯 했다. 교정에서 이따금 지나치며 안면이 있는 아이였고, 미영이도 나를 알고 있었다. 무엇일까? 무엇이 이 아이를 굳어버리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최대한 편안하게 말을 이어갔다.
“미영아, 딴 게 아니고 네가 선생님들에게 돌린 선물, 나도 받았는데 잘 받았다고... 특대생 되었다고 선물 돌린 것... 고마워서 말야. 선생님은 당연히 너희를 열심히 가르치는 건데 말야... 하하하...”
미영이의 입가에 살며시 웃음이 지나갔다. 가족과 학교 생활 등등의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미영이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미영이의 눈에 어떤 결심이 차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비전에 관련된 이 질문에 미영이는 당당히 말을 이었다.
“저는 정치외교학과를 가려구요.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그렇구나, 꼭 그 목표를 이루길 바래. 오늘 왜 그런지 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참 미영이는 교회에 나가고 있니?”
“어려서는 다녔는데 지금은 안 다녀요. 부모님도요.”
“그렇구나. 기도하는 정치인이 되길 선생님이 기도할게. 그리고 미영이도 꼭 다시 빠른 시간안에 교회에 나가길 바래.”
처음보다 얼굴이 많이 환해진 미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선생님.”
선물을 전해주고
나는 미영이에게 준비한 선물을 전달했다.
“뭐예요? 선생님.”
“아, 이건 선생님이 금년에 낸 책이야, <울보선생의 울보아이들> 거의 우리 영훈학교 아이들 이야기지. 네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건 너에게 쓴 나의 엽서.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것도 뽑아보겠니?”
나는 성구서표(성경 말씀이 적혀 코팅되어 있는 말씀 갈피)를 내밀었다. 미영이는 말씀을 뽑았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예레미야 1:5)
말씀의 뜻을 설명해주고 이어서 나는 미영이를 축복하며 기도했다.
잠시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 가운데 미영이에게 큰 격려를 더하고 계셨다. 미영이는 들어올 때의 경직된 모습은 다 사라지고 예의 활발한 여고생의 모습으로 다시 자율학습실로 돌아갔다.
하트 모양의 쪽지 편지
다음 날 내 책상 위에는 커피 한 병과 하트 모양의 종이에 손 글씨로 쓰여진 짤막한 쪽지 편지가 놓여져 있었다. 그것은 미영이가 쓴 편지였다.
“To. 최관하 선생님. 안녕하셔요. 서미영입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책을 읽고 나니 어느샌가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네요. 어제는 정말 감사했어요. 조금 낯설기는 했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어요. 그동안 좀 허무했던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여태까지 그저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아님 야자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만 인식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선생님께서는 저를 ‘서 미 영’으로 대해 주시는 것 같아 너무 기뻐요. 엽서에 써주신 것도... 저의 목표에 대해 다시 상기시켜주는 내용이었어요. 세상에 꼭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언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꼭 되고 싶어요. 정말 열심히 노력할게요. 아잣! 비록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적은 없지만 선생님께 저에 대해 알려 드리고 싶네요. 친하게 지내요, 선생님. - 미영 올림”
미영이는 성적이 우수한 아이였고, 또 선생님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는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부담감이 있지만 성적이 좋은 아이들도 부담감이 크다.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긴장감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라”는 말보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것이 더 큰 격려가 된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때에 맞추어 필요한 아이들을 연결시켜주심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이들을 만나게 되기 전에 내가 준비되어야 하는 점이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준비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미영이를 나의 제자로 삼아주시고 작은 것을 통하여 연결시켜주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격려하여주시는 은혜에 더욱 감사할 따름이다. 하나님께서 미영이와 이 가정을 다시금 교회로 인도하시고 만나주시고 축복하시리라 믿으며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