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달력과 기도엽서
내가 죽고 네가 사는 사랑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며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수고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곳을 다니시면서 가르치고 치료하고 전파하는 섬김의 삶을 사셨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법을 행하셨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며, ‘십자가를 통한 희생의 사랑’이다.
문득 은사님이신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시가 떠오른다.
‘눈이 부시게 부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예수님은 ‘내가 죽어 네가 사는’ 사랑법을 행하신 분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다다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믿음의 방향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데’를 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최대한 발휘하여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결국 그들을 예수님의 사랑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
생일축하엽서를 쓰며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생일 달력을 만들었다. 생일이 없는 사람은 없기에 그 날을 기억하고 축하하며 축복받는 것은 서로에게 큰 기쁨이 된다. 그러나 생일을 매일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에는 온라인상에서 생일을 알려주는 정보도 있기에 예전보다는 편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 챙겨주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붓펜으로 써서 드린 글에 나를 후원하시는 한 출판사의 사장님이 엽서를 제작해주셨다. 나는 그 엽서에 기쁨으로 아이들에게 생일 축하글을 썼다. 축복하고 기도한다는 내용을 썼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가득하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고 썼다.
또한 아이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하여 명렬표에 ‘비전’과 ‘종교’와, ‘생일’을 적도록 하였고, 그것을 가지고 생일달력을 만들었다. 월별로 만들어진 생일을 매일 아침 파악하고 기도하며 챙기고, 방학 중에 생일인 아이들은 당겨서 해주거나 몰아서 해주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법으로
그리고 생일날, 생일 맞은 아이를 불러내어 학생들과 함께 축복송을 불러주었다. 교실에 들어가 수업 시작 바로 전에 아이를 불러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주었다. 짤막한 시간이지만 받는 아이도 축복하는 아이도 모두 행복해한 것은 당연하다. ‘우리 모두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까...’
금년은 7개 학급 역 300여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엽서를 쓰고 있고 또 써가야 한다. 분주하다고 사랑의 행동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얼마나 있는가가 관건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니며 사랑을 실천하셨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었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치료해주고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계속하셨다. 우리의 분주함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게으름의 문제이다.
제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도하며 일하는 한 시간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열 시간의 효과를 낸다’. 그것이 곧 신앙인의 사는 방법이다. 부지런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아이들은 무척 기뻐했다. 다소 그냥 지나치기 쉬운 생일, 그리고 먼저 말하기도 쑥스러운 생일, 그러나 공식적인 축하 순서를 가지니, 아이들은 모두 기뻐함으로 박수를 보냈고, 또 기대감과 설렘을 가졌고 당일에는 즐겁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염되는 사랑과 큰 감동
사랑은 전염된다.
고3 여학생의 한 반에서는 담임 선생님을 위한 생일 파티가 열렸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준 것처럼, 그 반 아이들은 그것을 모방해 모두 엽서 한 장씩을 썼고, 담임 선생님을 위해 축복송을 불러주었던 것이다. 그 여선생님은 기어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
사랑의 수고는 감동을 낳는다.
의례적인 선물이나 이벤트의 기쁨보다도 사랑이 담긴 행동은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감동을 선사한다. 교육은 감동이다. 우리의 사람은 감동이다. 예수님의 삶은 감동이었다. 그분의 죽음은 더할 나위없는 진한 감동이었다. 나에게 있어 생일달력과 엽서를 사용한 아이들의 생일을 축복하는 것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지혜를 주셨다. 그것은 우리 학교에 근부하시는 선생님 모두의 생일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학생들로 하여금 그 날을 파악하고 작은 꽃 한 송이와 더불어 생일 축하엽서, 그리고 축복송을 불러드리는 일, 그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진행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것 또한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감동을 그려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의 수고는 결국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며, 결국 이들을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