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때리고 싶어요
교실속의 방관자
영호(가명)는 학교에 부적응하고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는 학생이다. 교과서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수업 중에도 절대 집중하지 않는다. 아니, 교과서나 선생님 이외의 것에만 집중한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1학년 국어 시간에 이 아이를 만났다. 처음에는 곱상하게 생긴 이 아이에 대해 그다지 문제가 있을 것이란 추측마저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며 선생님들의 입에 영호는 자주 오르내렸다.
“세상에, 깨워도 절대 안 일어나요.”
“신경질까지 부리더라구요.”
“왜 신경 쓰냐고 그래요.”
“나, 그 녀석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제자가 제자가 아닌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일선의 교사들은 낙망해한다. 적어도 사제지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 교육은 이루어진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모습을 가진 제자들과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이 시대 교사들의 큰 고민이다.
기도하는 수업
지난 주부터 영호의 팔에 염주가 매달려 있다. 나는 그것이 나를 의식해서 하고 왔다는 것을 나중야 깨달았다. 수업 전에 기도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나에게 영호는 이따금 말했다.
“선생님, 저는 불교예요.”
그 때 나는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러면 내가 기도하는 것 반대한다는 거니? 하지 말라고?”
영호는 순간 당황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그건 아니구요~~”
“하하, 영호야, 그리고 얘들아. 선생님 기도하는 것은 너희들과 약속하고 또 허락을 너희들이 해서 하는 것이니까 불편하면 언제든지 말해. 너희 반만 기도 안할 수도 있어. 그리고 가끔 욕도 하고 때리기도 좀 하지 뭐~”
이 정도 되면 아이들이 외친다.
“아뇨, 선생님. 그냥 기도해요. 기도 좋아요.”
난 불교야!
영호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선생님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내 수업에는 크게 지장을 주지 않아 끝까지 영호를 격려하며 수업을 이끌어 갔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나에게 붙여주신 까닭은 분명히 있을 테니까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아침마다 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것만이 영호의 생각과 삶을 온전케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가슴에 각인시키며 기도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힘을 주시고 평강을 주고 계셨다.
언젠가부터 수업 시작 기도를 할 때마다 들려오는 웅얼거림이 있었다. 그것은 영호의 목소리였다. 마치 주문을 외듯이 영호는 “난 불교야, 난 불교야”를 외쳤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기도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좋은 대화법은 일대일로 하는 것이다. 나는 쉬는 시간에 영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미소를 띠며 조용히 말했다.
“영호야, 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나눌까?”
순간 영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요?”
“그냥, 이것저것 영호에 대해 내가 관심이 많잖아. 어때?”
“그럼 여기서 말해요.”
그러나 나는 영호의 허락하에 학교 안의 조그마한 공간으로 갔다. 영호는 둘이 있는 것이 어색한지 시선을 마주 하지 못했다.
소망을 버릴 수 없어
그 날 나는 영호가 독실한 불교도 아니고, 또 가정도 불교가 아닌 것을 알아내었다. 또한 영호는 내가 수업 전에 기도하는 것이 어색하고, 또 기도하는 선생님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그 아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영호의 담임선생님을 통해 영호에 대해 자세한 것을 알게 되었다. 영호는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아빠 엄마는 이혼하고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영호의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과 경계, 비판적 태도는 부모님의 사랑의 결여가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픈 마음을 끌어안고 영호를 위해 더욱 기도했다. 아침 출근을 해서, 수업 때,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영호의 마음속에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이 가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소망을 주시는 분이다.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아이들의 문제를 확인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 후 대안의 지혜를 모색하는 것이 기도하는 사람이 할 일이다. 나는 영호에게서 소망을 버릴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계속 부어주고 계셨기 때문에.
때리고 싶어
영호가 있는 반의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날따라 아이들의 수업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나는 아이들을 마구 칭찬했다.
“얘들아, 시간이 갈수록 너희들 수업 태도가 정말 좋구나. 기특해. 이제 결과도 더욱 좋을 거야, 그렇지?”
계속 수업을 하며 아이들 사이를 걸어가는 데 영호가 나를 또렷이 쳐다보았다. 나와 시선을 마주 한 영호는 내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나도 잠시 영호를 보았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띠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영호의 입술에서 나온 말 때문이었다.
“때리고 싶어, 선생님 때리고 싶어.”
두세 번을 반복해서 말하는 아이, 그 내용은 나를, 선생님을 때리고 싶다는 것. 그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때달은 나는 잠시 교탁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이내 다시 영호에게 다가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영호, 너 이 시간 끝나고 나 따라 와!”
순간 영호는 움찔하는 듯 했다. 그러나 영호의 눈과 입술은 어차피 이렇게 된 일인데 뭘, 하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쉬는 시간 영호를 데리고 학교의 한 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영호는 사뭇 놀라는 듯 했다. 선생님이 자기를 학생부로 데려가지도 않고, 또 지난 번 특별실도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에.
나는 학교 건물 담 한 쪽에 아이를 세웠다. 잠시 긴장이 흘렀다. 나는 작게 그러나 강하게 말했다.
“영호, 이 녀석아. 너 인생 이렇게 계속 살거냐? 왜 네 인생을 이렇게 욕되게 하는거냐? 왜 네 스스로 괴롭히냐 이 말이야?”
때려도 좋단다
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영호에게 계속 말했다.
“너, 지금까지의 삶이 어떻다고 해도 좋아. 그런데 이렇게 계속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것 너도 알고 있잖아? 응? 영호야.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어떤 사람들이 너를 포기해도 나는 너를 포기 못한다. 왜 그런지 아니? 하나님이 나에게 그러셨거든. 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순간 영호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천천히 말했다.
“그래, 아까 너 나를 때리고 싶다고 했지. 그래 좋아. 나를 때려라! 한 대가 아니라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지 때려도 좋아. 마음껏 때리라고.”
영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요?”
“그래, 진짜. 그래서 내가 너를 여기로 데려온거야. 여기는 학교 CCTV도 안 잡히는데잖아. 너하고 나하고 비밀이야. 네 마음이 속 시원할 때까지 때려도 좋아.”
우는 아이
선생님을 때리겠다는 아이, 제자에게 맞겠다는 교사. 이 황당한 상황에서 간헐적인 숨소리만 나와 영호 사이에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이 꽤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영호는 시간이 갈수록 내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 힘차게 대들었던 아이의 눈은 점점 땅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내 앞에 머리를 숙이고 서 있는 제자, 영호.
영호는 울고 있었다. 그 울음과 함께 마음속에 분노도 녹고 있었다. 소리 없이 숨죽이며 울고 있었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도 울고 있었다. 나는 영호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안아 주었다.
“영호야, 너... 언제든지 말해. 선생님은 네가 때리면 언제든지... 맞을 수 있어. 근데 둘이 있을 때 그렇게 하자. 응?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그렇게 하면 나도 그렇지만, 늬가 더 좋을 게 없잖아. 그치? 그리고... 영호야! 네 마음이 이제 예수님께로 행하길 바래. 예수님은 널 사랑하시고 널 기다리고 계셔. 그 마음으로 선생님도 너에게 희망을 거는거야. 알겠니? 난 널 포기할 수 없어. 절대로. 넌 나의 제자잖니......”
영호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한낮의 학교 한 모퉁이에서 영호와 나는 그렇게 한동안 울고 있었다. 이 눈물은 한탄과 미움의 눈물이 아니라 회복과 소망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