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선이 선생님을 따라가요
작성자
최*하
작성일
10.10.25
조회수
1866

제 시선이 선생님을 따라가요

글을 통한 만남
아이들에게 수시로 글을 쓰라고 한다.
수업 자투리 시간을 내어서, 처음 만나는 시간에, 작은 종이에 ‘현재의 느낌, 생각, 고민, 비전, 하고 싶은 말’ 등을 적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기도하며 자주 만남을 가지려 노력한다.
아이들은 고민이 있을 때 능동적으로 선생님을 찾아오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만날 준비. 그리고 미리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말로 할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기억하기 어렵다. 또 만나자마자 하려하면 대화가 끊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글은 아무리 짧아도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글을 수시로 적게 하는 것이다.

사랑해! 사랑해요
과거의 ‘보충수업’을 지금은 ‘방과후 교육활동’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는 교사를 대상으로 학생들이 선택해서 강의를 듣는다. 금년 2학기에 나를 선택해 만난 1학년 남녀 학생들 40명은 수업에 열심히 집중한다.
교육은 감동이다.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것이다.
“얘들아! 너희들 정말 수업 태도가 너무 좋아. 집중을 잘하고 있어서 좋은 결과도 나올거야. 사랑해~~!”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아이들도 한두 번 후에는 반응을 보인다.
“선생님! 저도 사랑해요~”
깔깔 웃으며 이야기는 아이들이 늘어갈 때 나는 우리 학교에 임하시는 주님의 사랑하심을 감지한다.

유쾌한 보충수업
보충수업 8교시는 교사나 학생이 모두 지치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잘 활용하면 더욱 좋은 효과가 있다. 학교 생활의 마지막 시간인 보충 시간. 7교시까지의 학교 생활이 힘들었어도 8교시가 행복하면 하루의 학교 생활은 기쁘게 끝나는 것이리라. 그래서 8교시는 더욱 유쾌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취하는 방법은 ‘삶의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다. 교과서 수업을 하면서, 문제를 풀면서도 이것을 지양한다. 모든 학문은 결국 인간의 삶이 녹아 있고 그러한 삶과 관계가 있는 것이니 만큼, 특별히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거린다.
어느덧, 계절이 가을과 겨울의 길목에 서 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때 나는 보충수업을 하는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기도하다가 불현듯 한 학생의 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학생의 쪽지 편지는 다음과 같다.

시선이 선생님을 따라가요
“선생님, 저는 유연경(가명)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수업은 오늘이 처음인데 첫수업부터 늦게 들어와서 죄송해요. 반을 잘못 알아서 늦었어요. 선생님 성함만 알고 있었는데 국어를 맡고 계신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아서 조금 놀랐어요. 처음 가스펠반(기독학생회) 홍보하러 교실에 오셨을 때 첫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TV 채널을 돌려보다가 기독교 채널에서 우연히 선생님이 나오시는 걸 보고 집중해서 봤어요. 전 무교라서... 제가 기도를 하거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한기 동안 공부도 기도도 열심히 해볼게요. 선생님을 안 지 한 학기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지나가실 때는 저도 모르게 시선이 선생님을 따라가요. 중학교 때도 초등학교 때도 선생님께 이런 식으로 관심을 가져본 건 처음이라 얼떨떨해요. 여튼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멋있으세요. 마지막으로 한 학기 동안 잘 부탁드려요.“

하나님의 신호
짤막한 글 속에는 연경이의 마음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가슴에 전달되어 왔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왠지 모를 눈물을 주셨다. 그리고 나의 마음속에 이러한 음성을 들려주셨다.
‘연경이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만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내 연경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연경이를 만날 수 있었다.
연경이는 매우 조용해 보였고, 또 가녀린 아이였다. 수줍음도 타는 아이였다.
“연경아, 어서 와. 지난 번 네가 쓴 글을 읽다가 갑자기 너를 만나라는 하나님 신호가 있어서 말야. 이야기 나누어도 괜찮겠니?”
연경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선생님.”
연경이는 조용하지만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국어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와! 그렇구나. 그러면 선생님이 어떤 도움이 되면 좋겠는데... 가끔씩 오렴.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니?”

어두워진 얼굴빛
연경이는 화안하게 웃었다. 흰 얼굴에 살짝 홍조빛이 스쳐갔다.
“연경이는 가족이 어떻게 되니?”
순간 연경이의 안색이 어두워지는가 싶었다. 그리고 이내 말을 시작했다.
“엄마하고요, 아빠하고요, 동생 한 명 있어요.”
오랜 세월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니 몇 마디 나누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아이들이 아빠와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아이들일 때. 아이들은 쉽게 가정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어렵게 이야기를 할라치면 표정이 그렇게 어둡다는 것이다. 연경이도 그러했다. 가족에 대해 물을 때 그랬다. 그리고 아빠의 이야기를 할 때 연경이의 얼굴빛이 밝지 못했다.
순간 연경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눈물방울을 톡 떨어뜨렸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휴지를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다.

눈물을 흘리며
“아이고, 연경이가 할 말이 많은 모양이로구나. 우리 이야기 나눈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눈물이... 하하, 그래 눈물이 날 때는 그냥 막 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억지로 참지 말고 눈물 나오면 그냥 흘리렴.”
연경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가 있었다. 그 표정에는 불편하지 않다는 뜻, 그리고 이야기를 해도 좋다는 뜻이 있다고 믿겨졌다.
잠시 후 연경이는 아버지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연경이의 아버지는 술과 담배로 오랜 시간 병 치료를 해오고 계신다고 했다.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병원에만 다니며 통원치료를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엄마가 야간 식당에서 근무하시며 힘겹게 생활을 이어간다고 했다.
이 말을 하며 연경이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가슴 한 켠에도 눈물로 가득 차 왔다. 연경이에게는 격려가 필요했다. 그리고 위로가 필요했다.

교회 나가기로 하자
“연경아! 아빠가 밉니?”
낮은 목소리로 묻는 나에게 연경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뇨.”
“그럼?”
“그냥 안타까워요, 불쌍해요. 아빠가...”
“그래, 그렇구나. 연경이는 혹시 교회에 다니고 있니?”
“지금은 아니구요. 초등학교 때요. 그 때 이후로는 안 가 봤어요.”
“그렇구나. 우리 힘으로 잘 안 되는 것이 있지? 그리고 힘든 일이 있잖아. 그 때 네가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더 좋을텐데, 어때? 연경아,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예수님 믿는 게 어떠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연경이에게 핵심을 물었다. 연경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앗싸,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 그러면 선생님 다시 만나서 어떻게 해야할 지 또 이야기 나누자, 괜찮겠니?”
“네, 선생님.”

만나주시는 하나님
나는 연경이와 같이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연경이의 글을 읽으며, 연경이를 생각나게 하시고 만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연경이의 가족 이야기를 나누게 하신 하나님, 이 과정을 통해 주님께서 연경이를 다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하는 학생으로 다시 만나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연경이의 기도를 통해, 아빠를 병에서 회복시켜주시고, 하나님 잘 믿는 아빠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경이가 기도하는 국어교사로 잘 성장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 다 회복시켜주셔서 기쁨으로 모든 생활 누리게 하여주시옵소서. 연경이를 불러주시고 만나주시고 축복하시는 예수님......!”
기도가 계속 되는 가운데 연경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연경이가 써 놓은 글을 읽게 하시고 마음에 감동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연경이를 보내주시고 다시금 만나주시는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연경이가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성장하리라 믿으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