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귀신 들렸대요
빗속에 찾아온 제자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오후, 스산한 가을비가 대지를 휘감고 있었다.
나는 학교 안 특별실 기록보존실에 있었다. 순간 "똑똑“ 자그마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에 섞여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에는 웬 청년이 서 있었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하는 그 청년을 기억하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그 청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동호입니다. 3-4년 전 고3 때 제가 선생님 반이었지요.”
천천히 그리고 낮은 음성으로 말하는 그 아이를 훑어보며 나는 이내 좀 특별했던 한 학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동호!”
나의 얼굴은 매우 밝아졌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을 와락 잡았다.
그 때도 제가 이상했나요?
동호와 자리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동호는 예전보다 더 말이 느려진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동호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와 눈을 계속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눈을 마주쳐도 불안해보였고, 두려움 속에 동공(瞳孔)이 흔들리고 있었다.
동호는 나의 눈을 주시하며 물었다.
“선생님, 그 때도 제가 이상했었나요?”
‘그 때도’라면 지금 자신의 현재 삶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 아닌가? 나는 이 아이가 어떤 불안한 상황 속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호가 단순히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기도하고 있었다. 영적인 예민함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동호야! 고3때 네가 특별한 면은 있었는데, 이상하다거나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었는데, 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너는 특별한 아이야
“네, 선생님! 제가 좀 이상합니다.”
동호는 우울해 보였다. 그리고 순간순간 날카로운 눈빛을 쏘기도 했다. 나는 동호의 그동안의 삶을 들어야 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올 때는 꼭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파악하고 분석하기 전까지는 인내할 필요가 있다. 동호의 현재 삶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나는 동호에게 좀더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동호야, 어떤 이야기도 괜찮으니까 편안히 이야기 하렴.”
동호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정말 제가 이상해 보이지 않나요?”
“그렇다니까, 왜? 누가 너에게 이상하다고 그러니?”
“네, 많은 사람들이요. 부모님들도 그렇구요. 고 3때 선생님도 절 특별하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동호야, 늬가 학교 다닐 때 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한 마디씩 날리는 말이 통통 튀어서 특별했다고 나는 표현한거야. 이상한거하고는 좀 다른데...”
귀신에 씌었대요
동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동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거리에서 점을 치는 사람(무속인)을 만났다. 따라가서 사주 등등의 점을 보게 되었는데 자기에게 귀신이 씌어 있다고 했다. 그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부적을 샀고, 여러 미신 행위를 하였다고 했다.
동호 자신도 남들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지새우는 것, 몽상에 젖어드는 것,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는 것 등등. 그런 중에 귀신이 붙어있다는 말을 들은 동호는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고, 이내 골방 안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자기에게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면도칼로 손목을 끊어 자살을 기도했었고, 가까스로 살아난 적도 있었다. 대학생활은 자연스레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도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동호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순간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선생님, 선생님도 제가 귀신에 씌인 것 같으신가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부정의 의미보다는 동호를 먼저 안심시키고 싶었던 행동이었다. 그리고 계속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쉬고 싶었어요
“동호야, 그렇지 않아. 설령 네가 귀신이 씌었다고 해도 해결 방법이 굿을 하거나 점을 치거나, 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고쳐지지가 않거든. 그런데 어떻게 선생님 찾아올 생각을 했니?”
순간 동호의 눈망울이 출렁거렸다. 울듯 말듯한 얼굴로 동호는 말했다.
“쉬고 싶었어요, 선생님... 너무 힘들어서... 그냥 푹 쉬고 싶었어요. 그런데... 집에서 멍하니 있는데 선생님 얼굴이 떠오르는 거예요. 고3 때 선생님이 매일 기도해주셨던 그 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그때가 무척 그리워서요...”
그 때 동호의 눈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나는 동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많이 힘들었구나. 녀석...”
동호는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어깨를 흔들며 옛날의 은사를 찾아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악한 영이 나의 제자를 건드리고 흔들고 있다는 것에 순간 화가 났지만, 그래도 나를 찾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아니, 기도하는 담임교사를 생각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더욱 일하신다. 무엇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지금 동호에게는 그 작은 믿음이 필요했다.
동호를 마주 하며 나는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다시 만나주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고3때 특별한 사고(思考)와 깊이 있는 생각이 앞섰던 아이, 철학적인 용어를 써가며 아이들을 당황케 했던 아이. 나는 그저 이 아이가 멋있게 잘 성장하리라고 믿었었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있었기에. 그러나 전적으로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믿음은 소유하지 못했던 아이였다.
하나님께서는 근 4년 만에 옛 제자를 만나게 하시며 다시금 사명을 일깨워주셨다.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
불현듯 이 말이 내 뇌리를 스쳐갔다. 더욱이 예수님을 전하는 그 사명, 복음의 사명자로 나를 삼아주시고 기독교사로 불러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
“동호야, 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네 의지가 아닌 것 같아.”
동호는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동호야, 네가 고 3때 하나님께서는 너를 이미 사랑하고 네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인도하신거지. 귀신은 귀신 장난을 하지만 사실 그 귀신을 쫓아내고 온전히 거룩한 영으로 깨끗케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는 없으신단다. 그런데 너는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힘든 생활을 해왔잖아.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 인도하신거야. 이해가 되니?”
동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
“예수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셔. 그리고 십자가에서 널 위해 죽으신거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단다. 믿을 수 있겠니? 아니, 믿겨지니?”
“네, 선생님.”
“그래, 예수님을 믿으려는 너를 귀신이 방해하는 것 같아. 귀신은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무척 싫어하거든.”
눈물과 감격의 회복
나는 동호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설명하며 제시했다.
“기도 이외에는 이런 류(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낸 성경 속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영접기도에 들어갔다. 동호는 영접기도를 따라했다.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눈물이 가득한 목소리로 기도하는 동호와 함께 내 눈에서도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기도를 마친 후 나는 동호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나보다 더 훌쩍 큰 동호를 안고 나는 다시 한 번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동호를 다시 사랑한다고 확인시켜주시려 오늘 이 자리에까지 인도하여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새롭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다시는 악한 것들이 틈타지 못하게 보호하여주시고, 설령 다시 덤빈다 하더라도 예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을 부어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호를 통해 계획하신 아름다운 비전들을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동호를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잘 성장시켜 주시옵소서.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사용하여주시옵소서...”
기도는 꽤 오랜 동안 계속되었다. 간절히 기도하는 내 목소리와 눈에서도, 동호의 눈에서도 감격의 눈물이 가득 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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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제자 동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시금 회복시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동호를 위해 끝까지 기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