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원망하지 않아요
고백하는 아이들
요즈음 아이들과 거의 매일 상담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상담하자” 라고 하는 상담보다는, 기도 가운데 생각나는 아이들을 부르고 또 아이들이 찾아오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상담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인 이 영훈고등학교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지고 사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누구보다 열심히 잘 생활하고 싶은데,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 다른 환경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이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존재감을 다시금 절감한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무슨 많은 말을 해주는 것보다 아이들의 입술이 열리며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 나는 들뜬다. 이것은 즐거운 흥분이며 감사한 기쁨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스스로 치유되고 회복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선생님, 선생님께 이렇게 제 이야기를 풀어 놓은 것이 속이 후련했어요.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나와 이야기를 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던 미령이가 내 홈페이지에 남겨 놓은 글이다.
비슷한 처지예요
“...선생님, 영란이도 저하고 비슷한 처지여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상담 중에 나온 미령이의 이 말을 무심코 지나칠 수 없었다.
“아... 그렇구나, 비슷한 처지라면?”
미령이는 또렷하게 말했다.
“네, 부모님하고 같이 못 사는거요. 이혼하신 건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미령이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영란이를 만났다. 영란이는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을 때 흔쾌히 대답했다.
“네!”
그리고 며칠 후 수업을 모두 마친 후 학교 앞 영훈센타에서 자리를 같이 했다. 영란이는 흰 얼굴에 가녀린 미소를 띠고 나를 찾아왔다.
“영란아, 얼마 전에 미령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하고 상담했다고 미령이가 얘기하든?”
“네, 선생님.”
저는 혼자 살아요
이렇게 시작된 영란이와의 대화는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영란이는 얼굴빛이 우울한 듯 했지만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고, 차분한 어조로 조리 있게 말 할 줄 아는 아이였다.
“선생님, 저는 혼자 살아요... 중 1때부터요. 엄마하고 아빠하고 이혼했어요. 저는 외동딸예요. 형제도 없구요. 혼자 산 것은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구요... 저... 그렇게 보이나요?”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니,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넌 볼 때마다 밝고 환해서... 그랬구나... 아니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어도 아빠나 엄마하고 같이 살 수 있는 것 아냐? 왜 혼자 지내니?”
“네에... 아빠가 다른 여자랑 살거든요... 엄마도 다른 남자랑 살구요.”
순간 영란이의 눈이 반짝했다. 영란이의 마음속에 있는 아픔이 나에게도 저릿하게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란이는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요. 아빠하고도 같이 지내기가 뭐하고, 엄마도 그렇잖아요. 제가 너무 불편해서 혼자 살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두 분이 합의해서 저에게 방 하나 얻어준 거예요... 그리고 가끔씩 용돈 주시구요... 선생님, 저는 이게 편해요.”
원망하지 않아요
“선생님, 저는 이게 편해요”
하는 그 말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란이 아빠와, 엄마의 마음도 헤아려야하겠지만, 결국 이렇게 영란이는 혼자 살다가 결혼을 하면 그만인가, 영란이의 부모님은 그런 생각들을 하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란이 앞에서는 이러한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영란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생님, 사실은 제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다 하고 싶었어요. 아빠하고 만나도 엄마 때문에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엄마를 만나도 아빠 때문에 말을 잘 못해요. 그리고 두 분 다 새로운 가정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사실 제가 혼자 사는 건 좋은 거 아니잖아요. 누구에게도 자랑할 거 못 되잖아요...”
눈물을 흘리는 영란이 앞에서 나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영란이는 그러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작은 정적은 영란이의 눈물 소리로만 간헐적으로 흔들리는 듯 했다.
그 때 영란이는 조용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런데요. 저... 아빠, 엄마 원망하지 않아요. 절대 원망하지 않으려구요. 저를 낳아주신 분이잖아요. 그리고 우리 아빠, 엄마가 잘 되기를 바라니까요...선생님도 우리 아빠, 엄마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
흐르는 눈물 속에 나는 영란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어린 시절부터 아빠, 엄마와 같이 살지 못했지만 진정한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영란이를 만나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빠,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 사랑의 마음을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가정을 지켜주옵소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영란이를 위로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계속되는 기도 속에 영란이와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위로를 맛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영란이에게 속삭이는 듯 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