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냄새 여자는 향기
작성자
최*하
작성일
10.05.05
조회수
2118

남자는 냄새 여자는 향기

만우절의 기대
2010년 만우절!
금년에는 1학년 남학생 담임을 하고 있다.
은근히 ‘이 녀석들이 어떤 장난을 칠까’ 기대 반 염려 반의 마음으로 교실로 들어섰다. 교실 안의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아니 심심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우리반 아이들이었다.
여학생들 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끼악!”
복도로 괴성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하였다. 20여 년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오는 가운데 이제는 아이들보다도 내가 더 재미와 흥미를 기대하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반을 바꾸었어요
3학년 여학생 반 오후 수업 시간이다.
수업 준비를 하고, 교재를 챙기고, 복도를 지나 드디어 교실 문을 열었다.
“아니?”
그 여학생 반 교실에는 웬 남자 아이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가만히 보니 우리 반 아이들이었다.
“야! 너희들, 너희들 모야?”
지훈이가 대답했다.
“누나들이 바꾸자고 해서 바꾸었는데요.”
나는 즉시 우리 반으로 갔다. 3학년 여학생들은 나를 보더니 깔깔대고 웃었고 어떤 아이들은 책상을 치기도 하였다.

원상복귀 할 걸요
우리 반에 수업을 하려고 올라오던 후배 선생님은 황당했는지 당황하고 있었다.
“선생님, 어떡하면 좋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놔두세요. 그러면 아마 원상 복귀 될 거예요. 하하하, 녀석들, 만우절이라고...”
나와 유선생님은 복도에서 잠시 기다렸다. 아니, 아이들이 그 교실에서 잠시 즐길 기회를 준 것이다. 십 분 가량이 지난 후에 나는 여학생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어쨌든 수업은 하려고 하는데 너희들 그냥 이 반에서 나하고 할까? 유선생님은 너희 반에서 남자애들 수업하면 되니까...”
그때 여학생들은 큰 소리를 질렀다.
“아니요. 선생님. 저희 교실로 갈 거예요. 여기 안 돼요. 이상한 냄새 나요.”
나는 유선생님에게 찡긋 했다.
“거 봐요. 바로 제 자리로 가죠? 선생님.”

담요 냄새가 좋아요
여학생들은 자기 반으로 웃으며 돌아갔고, 우리 반 남학생들은 아쉬워하며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자기들끼리 수군댔다.
“누나들 교실은 향기가 나, 그치? 근데 우리 반은 모야. 냄새 이상해, 쩔어!”
그리고 며칠 후 우리반 모둠일기에 우진이가 만우절 날의 해프닝을 이렇게 써 놓았다.
“... 오늘 6교시에 3학년 누나들이 와서 반을 바꾸자고 해서 갔는데, 반에 들어가자마자 향수 냄새가 나고 의자가 왠지 모르지만 길쭉했다. 회장이 들어가서 어떤 누나의 담요 냄새를 맡고 포효를 했다. ‘끼야호!’하며 말이다. 너무 웃겼다. 그리고 이지훈은 누나들 냄새를 자기 가슴 속에 넣고 왔다고 옷을 안 빤다고 했다. ㅋ ㅋ 어쨌든 우리반은 참 재미있는 반인 것 같고 반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나는 이 일기를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걔 변태에요?
그리고 며칠 후 3학년 바로 그 여학생 반의 수업 시간.
나는 우진이의 모둠일기를 여학생들에게 읽어주었다.
“...회장이 들어가서 어떤 누나의 담요 냄새를 맡고 포효를 했다...”
여학생들은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모야, 변태야. 누구야?”
그러면서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본모습이 이런 것일게다. 나는 계속해서 읽었다.
“......그리고 이지훈은 누나들 냄새를 자기 가슴 속에 넣고 왔다고 옷을 안 빤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여학생들은 책상을 치고 난리가 났다.
“선생님, 걔 누구에요? 한 번 데리고 와 주세요.”

남자의 향기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래, 누나들 반에 있으니까 그렇게 좋았다고? 우리 학교는 남자는 냄새 여자는 향기야... 근데 우리반에도 향기가 하나 있잖아. 바로 너희들 냄새를 향기를 바꿔주는 남자의 향기... 바로 나야!”
아이들은 웃으며 외쳤다.
“모야~, 모야~!”

남자의 냄새! 여자의 향기!
우리 영훈고의 교실 모습이다.
그 곳에 우리 아이들이 있다. 나의 제자들이 있다.
아이들은 본래 싱그럽다. 순수하다.
그 해맑은 웃음을 자주 보고 싶다.
그 순수한 웃음을 찾아주고 싶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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