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웬 꽃이야!
이게 웬 꽃이야
아침 7시가 좀 넘어 학교에 도착했다.
나의 자리가 있는 생활지도부실로 문을 여는 순간 내 책상 위에 놓여진 화병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장미 한 송이와 후리지아가 그 자그마한 꽃병에 꽂혀 있었다. 꽃병 앞에는 “선생님, 사랑합니다.”라는 예쁜 글귀가 쓰어 있는 색지가 붙어 있었고...
‘흠~ 어떤 아이가 내 생일이라고 갖다 놓았나 보구나.’
생각할 즈음, 뒤편 자리에서 한 선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선생, 이것 웬 꽃병인가? 선생님들 자리마다 다 있네.”
그제서야 나는 이 꽃병이 내 책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내 뒤의 모든 선생님 열 분의 자리마다 같은 화병이 놓여 있었고 글귀도 같은 것이엇다.
선생님들과 나는 매우 궁금해졌다. 그리고 왜 이렇게 갖다 놓았을까, 누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섣불리 ‘“제 생일이니까요, 아이들이 돌린 것 같아요.”말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아니면 낭패니까 말이다.
가스펠반 아이들이지?
“잠깐만 계셔 보셔요.”
나는 생활지도실을 나와 가장 큰 교무실인 제1교무실로 달리다시피 했다. 다른 교무실에도 이렇게 다 되어 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교무실에는 아무리 찾아도 그러한 화병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른 교무실은 아무 것도 없네요. 유독 생활지도실만 있는 거예요.”
생활지도부 선생님들이 한 말씀씩 하셨다.
“하여튼 기분은 좋은데요. 이렇게 꽃이 있으니까요.”
“근데 말야, 이거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거 아냐. 우리가 학생들 지도를 너무 엄하게 한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놈들이 제발 사랑해 달라고... 반어적으로 말하는 것 아냐?”
한 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 때 한 선생님이 또 말씀하셨다.
“최선생은 알지 않아? 가스펠반 아이들 아니냐구...”
가스펠반은 영훈고 기독학생회의 학교 계발활동반 이름이다.
“...... 이렇게 할 만한 아이들이 가스펠반 밖에 없는데...”
48번째 생일
그러나 사실 나도 전혀 몰랐다. 누가 이렇게 한 것인지 말이다.
의아해하며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1학년 4반 남학생반 교실로 갔다. 문을 여는 순간 불이 꺼지고 케잌이 들어오고 축복송이 울려퍼졌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기특한 녀석들.
48년을 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48년의 삶에 들어섰다.
음력 생일인지라 기억하기가 어려울텐데, 생일 사흘 전부터 문자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의 한 사이트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잊고 있었던 분들의 축하 메시지까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여러 학생들로부터 4번의 생일 축하, 케잌 불 끄는 자리를 경험해야 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생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날이다.
생일! 기쁜 날이다. 의미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본 따 만든 존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이다. 여기서 형상은 외모를 말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본질, 성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수업하는 학생들의 생일을 파악하고 있다. 명렬표에 생일과 종교, 그리고 꿈과 비전을 쓰라고 해서 그것을 활용할 때가 많다.
아침마다 전교생과 교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그 날 수업할 내용과 만나야 할 아이들을 챙긴다. 그 때 생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생일을 맞이한 아이가 있으면 축하엽서를 쓰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름을 부른다.
“미영아, 오늘 생일이지. 축하해. 얘들아, 오늘 미영이가 생일이야.”
하며 준비한 엽서를 건넨다. 작은 엽서 한 장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미영이, 그리고 나는 미영이에게 두 손을 내밀어 축복송을 부른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러면 모든 아이들이 손을 내밀어 함께 그 아이의 생일을 축하한다.
일주일에 몇 번씩 하나님 안에서의 축복송이 울려퍼지는 학교, 그 학교가 바로 기독교학교가 아닌 영훈고등학교이다. 참으로 감사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학교다.
가스펠반과 고3기도회
생활지도부실에 화병을 놓은 주인공이 드러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가스펠반 아이들이었다. 내 생일이라서 책상 위에 꽃을 놓으려 했는데 다른 선생님들까지 함께 하자고 고3 대영이가 안을 내놓았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을 마구 칭찬했다. 그리고 이 자그마한 일을 통해 생활지도부 선생님들이 기뻐했던 것을 생각하며, 한 가지 지혜가 떠올랐다. 어느 날엔가-스승의 날 같은 때-전체 선생님들의 책상 위에 깜짝 이벤트로 이렇게 꽃과 화병을 올려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기왕이면 각 교실에도 말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저녁에는 고3기도회를 하였다. 매주 금요일 5시-6시까지 고3들을 위한 기도회, 금년에는 음악실에서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여건을 조성해주셨다. 약 6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후배들도 여럿 보여 있었고, 나는 감동과 기쁨의 기도회를 고3들과 함께 누릴 수 있었다. 모든 순서를 마쳤을 때 갑자기 불이 꺼졌다. 그리고 들어오는 케잌, 2학년 아이들이 어쩐지 안 보인다 했는데 그제서야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어서 넘겨주는 선물, 그리고 하드보드지에 쓴 선생님을 사랑하는 스무 가지 이유, 포스트잇에 한 마디씩 쓴 축하글 등 정말 감사하고 기쁜 선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기도였다. 아이들이 나를 붙잡고 축복하며 기도해주었다. 쉴 새 없는 눈물, 그리고 더욱 기도하는 섬기는 교사가 되겠다는 결심,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가득한 48번 째의 생일이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모든 삶과 죽음 모두를 하나님께 올려드리오니 마음껏 사용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