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텐 빠는 선생님
암이래요
지방 집회를 하고 상경하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최선생, 나 김선생예요.”
나에게 여간해서는 전화를 하는 분이 아니었기에 나는 순간 마음을 추스렸다. 혹시 무슨 급한 일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네,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항상 밝았던 김선생님의 목소리는 비맞은 버들가지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문득문득 버들가지가 출렁거리는 것같은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나는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한숨 소리와 더불어 김선생님은 짧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암이래.”
이 짧은 말을 하기가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은 생사의 기로에 서 본 사람만이 경험하는 것이리라.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김선생님의 얼굴이 내 앞을 스쳐갔다.
옛사람과 새사람
김선생님과 나는 그다지 가까운 편이 아니었다.
음주를 일삼았던 근 20년 전의 나는 지금의 학교에서 김선생님을 만났고, 술에 취하면 가끔씩 김선생님과 다툼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육체적인 싸움은 아니었지만 항상 올곧은 것을 주장하는 나의 입바른 말에 털털한 성격의 김선생님은 못마땅한 것이 있었던 것같다.
"그러니까 김선생님. 술 취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하는 나의 말에, 내용보다도 몇 살 더 먹은 자기에게 바로 얘기하는 후배 교사인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같다. 그리고 그 언젠가 그분은 홧김에 앞에 있는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수 년 후, 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 가정에 대대로 물려왔던 음주문화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김선생님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한 사람이 바뀌면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만물이 새롭게 보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나는 불교 신자인 김선생님을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로 먼저 준비하고 그 영혼을 위해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선생님, 그 동안 제가 무례하게 대했던 것 용서해주세요. 사과드립니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내 눈을 김선생님은 순간 바라보다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아닙니다. 최선생님. 제가 잘못한 겁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실수한 거지요.”
그로부터 김선생님과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연결시켜주고 계셨던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기도하며
고속도로 한 면에 차를 정차해 놓고 나는 김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그렇군요. 얼마나 걱정되세요. 그리고... 전화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김선생님은 예의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 최선생, 왜 그런지 의사 진단을 받자마자 최선생이 생각나더라구... 그래서 전화한거야... 미안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히 있다고 확신한 나는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느껴지는 것.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감격하게 된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김선생님을 분명 만나주시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나는 일부러 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김선생님. 감사해요. 저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해주셔서요. 선생님, 암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면 안 나을 병이 없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먼저 믿는 거거든요.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놀라운 기적도 체험하게 된답니다. 선생님.”
“그래, 최선생. 근데 아직은 내가 잘 모르겠고... 또 우리 집은 대대로 불교였잖아.” “네, 선생님.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 아시죠? 제가 매일 선생님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거요.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이렇게 통화하게 하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들지 않으시나요?”
“그래, 그런 것도 같아.”
나는 전화를 붙잡고 김선생님을 위해 기도했다. 고속도로 변의 차 안에서 나는 큰 목소리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나님, 김선생님을 만나주시고, 또 암에서 깨끗이 씻김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기도 덕분이야
그리고 김선생님은 학교 휴직을 하고 강원도로 들어갔다. 식이요법과 자연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또 어떤 치료를 받든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계속해서 기도했다. 김선생님은 아직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오니 하나님께서 역사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기도는 김선생님이 다시 돌아온 6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다음 학기가 시작될 무렵 김선생님은 학교에 복직을 했다. 나는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김선생님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 김선생님.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활짝 웃는 표정의 김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최선생 기도 덕분이야. 의사 선생님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고 하시던데. 그리고 이렇게 호전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대. 최선생, 다시 말하지만 최선생 기도 덕인 것 같아.”
몸은 살이 쪽 빠져 있지만, 눈이 밝아 있는 김선생님은 보니 무척 기뻤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 회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인한 것임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 감사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리라 마음먹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김선생님을 만나주시리라.
커텐을 빨며
김선생님의 행동과 말투가 완전히 바뀐 것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도 동료교사들도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김선생님에 대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요즘은 전혀 소리도 안 지르고... 궂은 일은 혼자 다하고...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 거야.”
아이들에 대해 자상한 선생님, 동료교사들에게 따뜻한 선생님으로 김선생님은 변화된 것이다.
복직한 지 두 달 가량 지났을 때였다. 김선생님은 가슴 한 가득 때가 묻은 천을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선생님 이게 무언가요?”
김선생님은 묻는 나의 말에 웃으며 대답을 늦추었다. 대신 자신의 가슴에 있는 천들을 차에 모두 실어 놓은 후 말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최선생, 내가 다시 살아나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고 보니까, 그동안 참 못되게 살아온 것 같아.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남을 위해서 할 일을 좀 찾아 해보려고 말야...”
나는 김선생님의 눈을 주시했다. 눈동자가 바뀌었다. 마치 온순한 양처럼.
“그래서 각 교실에 있잖아. 커텐을 빨아다 걸어 놓는 중이야. 학교에서 한 번 빨아주지도 못하고 아이들도 공부한다고 신경 쓸 새가 없잖아. 그래서 교실 하나하나 다니면서 더러워진 커텐은 수거하는 중이야. 벌써 한 학년은 끝났는 걸.”
나는 이 말을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어쩌지 못했다. 작은 사람에게 정성을 들이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곧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김선생님은 그 작은 사랑을 베풀고 있었다. 그 사랑은 매우 위대해 보였다.
교무실과 39개 학급, 그리고 특별실의 커텐까지 모두 빨려고 작정했다는 그 분의 고백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내 가슴에 이런 생각을 심어주셨다.
“분명 내가 김선생을 만나줄 것이니, 더욱 사랑으로 섬기고 기도하라.”는 음성이었다.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아니 우리의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분을 살펴주신다. 기도의 사람인 우리는 우리의 때와 방법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것이 요구된다. 김선생님을 위한 기도는 그래서 오늘 밤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 김선생님을 꼭 만나주시옵소서. 기도 가운데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 이제 육적인 회복으로 그치지 마시고 영적이니 회복과 주님과의 만남 허락하여주시옵소서. 그 영혼을 만나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