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창간특집] 분열된 폐허에 화합의 새 싹 틔우자
나이를 먹고서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날마다 자신은 어째서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느냐고 하늘에 원망했다. 보다못한 하나님이 여자에게 온갖 꽃씨가 담긴 자루를 내려주며 이르셨다. “너는 아이를 낳는 대신 이 꽃씨 자루로 온 세상을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가꾸거라.”
필자가 어릴 적 남쪽 고향 마을에서 전해들은 ‘꽃씨 할머니’ 전설이다. 신탁을 받은 이후 여자가 한평생 자루를 끼고 다니며 가꾼 아름다운 꽃동산은 우리 생명과 삶의 마당이요,그 꽃씨는 조화로운 평화의 씨앗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당시에 그 꽃씨 할머니의 작품임이 분명한 갖가지 색깔의 꽃과 사람이 함께 한 평화의 동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 사는 고을이면 다 그렇듯이 그 마을에도 하는 일이나 재산,타고난 생김새와 성품,배움이나 세상 물정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았다. 부자와 가난뱅이,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어질고 착한 사람과 어수룩한 푼수형이 함께 이웃해 살았다. 힘 좋은 장사나 효자효부가 있는가 하면,늘 병을 달고 살던 허약체질과 시각장애자,청각장애자,정신이상자에 몹쓸 불효자도 있었다.
하는 일도 다양해 이장을 비롯해 들밭 농사꾼,뱃사람,목수,장사꾼,의원에서 애물단지 인간형인 노름꾼,주정뱅이,마약쟁이에 남 헐뜯기 좋아하는 험담꾼까지 골고루였다. 한 마디로 세간에 볼 수 있는 온갖 선악간의 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이웃간에 불화와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같은 차별성이나 갈등 탓에 이 마을에 고질적 분란이나 결정적 파국이 빚어진 일은 없었다. 어떤 사안을 두고 이해나 생각이 맞서고 말과 감정이 격해진 다툼에도 종당엔 한마을 이웃 동반자로 서로간에 다름과 모자람을 배웠고,긴 인간살이 과정에 항용 치르게 마련인 범상사로 치부해 넘어갔다. 바깥 세상과의 소통이 어려웠던 시절,사람살이에 필요한 일과 역할을 서로 나눠 갖추고 자족해 나갈 뿐 아니라 이웃의 아픈 곳,빈곳을 어루만지고 채워주는 상조와 융화의 모듬살이 동산이었던 셈이다.
1950년대의 6·25 전란을 거치면서 마을은 더욱 지혜로워졌다는 기억이다. 그 시절 그 곳에도 다른 여느 마을처럼 글방 선생님을 비롯한 구습전통의 노장층과 일찍부터 대처 출입이나 신학문 수학으로 새 시대와 바깥 문물을 접해온 젊은층간의 알력이 빈번했다. 그것이 더러 보수와 개혁,좌우이념 추종자들간의 갈등과 대립상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을 역시 수난의 일제 강점기를 겪었고,한국전란을 함께 치렀다.
잊을 수 없는 일은 그 잔혹한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에도 마을 안에 누군가의 마음 속 구원이 빌미가 되어 인명을 다친 사례가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이 쪽 저 쪽으로 세상이 이어 바뀌는 동안 실제로 마을 일을 맡았던 사람은 구학(舊學)의 노장층과 신지식층 젊은이 무리가 주축이었다.
이들이 서로 미더운 경륜과 밝은 통찰력을 합해 그 야만의 한 시절을 무사히 이겨 넘어선 화합과 평화의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마을이 다시 옛날의 평온을 되찾던 날,그곳을 찾아온 수복 부대 책임자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마을에서 ‘깨끗한 밥’ 얻어먹고 싶어 굳이 당신들을 찾아왔다”며 때늦은 점심을 청했을 정도니까. 비약일지 모르지만,신구 세대와 다른 이념의 사람들이 서로를 감싸며 조화롭게 융화해 나간 이 마을일을 두고 보면 가위 우리 모두가 꿈꿈직한 참 평화의 동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세상을 향한 우리 생각의 흐름은 어떤 모습인가? 온통 분열과 갈등과 대립 투성이다. 나라 땅의 갈림은 젖혀 두고 당장 눈앞의 지역간 대립상(지방특성이 아닌 정치적 지역감정),계승과 감싸안기보다 내일의 이름을 빌려 지난날을 일방적으로 심판하려는 데에서 야기된 세대간·시대간의 배척과 단절현상,소득의 양극화로 인한 계층간 갈등,이념과 통일문제를 둘러싼 국론분열의 위기 등 굳이 다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분오열된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이 모든 대립갈등의 밑바닥에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치유를 어렵게 만드는 두어 가지 악성적 특징이 자리를 틀고 있다. 첫째는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자기 무오류와 타자 배제의 독선적 사고방식이며, 둘째는 그 무오류와 정의로움의 평가가 객관적 검증에서가 아니라 자기 위주의 이기적 독선에서 자행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에 누구는 안팎으로 온전히 옳고 선하기만 하며,누구의 삶은 한결같이 악일 뿐일 수 있는가. 선하고 정의로워 보이는 삶에도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이 상대적으로 우열의 정도를 달리해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 양자의 운명적 싸움 속에 부단히 창조적 선택의 길을 가려 하고 있을 뿐이다.
수년 전 필자는 중국대륙 여행 중에 그 곳 양자강 뱃길을 흘러내리면서 그 강의 보이지 않는 덕목에 감탄한 일이 있었다. 양자강은 내륙 곳곳을 굽이쳐 흐르며 지저분한 쓰레기와 흙탕물로 벌겋게 더렵혀져 있었다. 그러면서 강물은 그 넓은 가슴으로 끊임없이 내륙을 청소하고 정화시켜 나갔다. 온갖 삶의 배출물을 안고 흘러내림으로써 그 삶터를 온전히 되돌려 놓고,드디어는 크고 먼 바다로 흘러들어 스스로를 지우고 함께 섞이는 모습이 과연 중국대륙과 그 곳 사람들의 생명의 강이요,삶의 어머니라 할 만했다.
우리는 흔히 우리 삶의 총체적 흐름을 ‘역사의 강물’로 일컫는다. 하지만 세상을 함께 아울러 흐르는 역사의 강이 어디 처음의 맑은 샘물,계곡물로만 흐를 수 있는가. 하물며 맑음과 흐림조차 가려지지 못한 터에 어느 삶의 강줄기인들 저 혼자 넓디넓은 바다에 이르고,그 역사를 이룰 수 있는가. 오늘 아무리 맑고 깨끗한 흐름을 자부하는 삶이라도 어차피 온갖 다른 이웃들과 흐름을 함께 감싸고 섞이며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일엔 보다 큰 포용과 관용의 바다에 이르러 서로의 깨끗함이나 더러운 모습을 지우고 다 함께 영원하고 양양한 삶과 역사의 대해를 이루게 된다.
갈갈이 찢긴 정신의 폐허 위에 우리는 이제 공동의 삶의 동산을 새로 가꿔 나갈 우리 마음의 씨앗을 다시 심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그 마을 일을 한 번 더 빌려 말하면 그 곳에선 매년 새해를 맞아 온 동네의 화합과 평화를 다짐하는 ‘대동제’라는 큰 축제가 치러지곤 하였다. 해마다 새로 나아가기 위해 거듭 새 씨앗을 심음이다. 내일의 온전한 삶의 동산을 위해 우리가 오늘 어떤 정신과 마음의 씨앗을 심어야 할까.
이청준(소설가)·그림=김선두(화가·중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