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세 개
작성자
김*태
작성일
11.12.26
조회수
1646

①아내의 눈이 되어준 남편의 입: “10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부산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나는 사정이 있어서 일찍 기차를 탔다. 피곤한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잠을 청했지만 사람이 많아서인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얼마를 지냈을까? 잠시 정차했던 청도역을 지나면서 비어있던 내 뒷자리에서 이야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와! 벌써 겨울인가? 낙엽이 다 떨어졌네. 근데 낙엽 덮인 길이 너무 예쁘다. 알록달록 무슨 비단 깔아놓은 것 같애. 밟아 봤으면 좋겠다. 무척 푹신할 것 같은데”

“저 은행나무 정말 크다. 몇 십 년은 족히 된 것 같은데 은행잎 떨어지는 게 꼭 노란 비 같아”

 “여긴 포도나무가 참 많네. 저 포도밭은 참 크다. 저 포도들 다 따려면 고생 하겠는데”

“저기 저 강물은 정말 파래. 꼭 물감 풀어놓은 것처럼. 저 낚시하는 아저씨는 빨간 모자가 참 예쁘네”

“저기 흰 자동차가 가네. 그런데 엄청 작다. 내 힘으로도 밀겠어. 운전하는 사람은 20대 초반 같은데 안경을 썼네. 어! 벌써 지나갔어”

겨우 잠들기 시작한 나는 짜증이 났다.

“무슨 사람이 저렇게 말이 많아? 자기 혼자 다 떠들고 있네. 다른 사람은 눈 없나?”

잠자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며 뒷자리에 앉은 말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는 순간 난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40대 중반 아주머니와 남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서로 손을 꼬옥 잡고 계셨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일일이 말을 해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하고 있었다. 마치 실제로 보기라도 한다는 듯 입가엔 엷은 미수까지 지으면서…” (어느 인터넷 글에서 인용)

②매듭이 있으면 풀고 가자:

“세상 살면서 어찌 나를 싫어하고 질시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내가 잘나가던 못나가던 질시하거나 질타하는 이웃은 있게 마련이다. 그 문제를 잘 헤아리는 지혜가 그 사람의 인생길을 결정해주는 지표인 것이다. 사람들의 심성은 대개 남을 칭찬하는 쪽보다 남을 흉보는 쪽으로 치우쳐있다. (나 잘되는 것 보다 다른 사람 못되는 것 보는 게 더 고소하다. 자기 집만 안 탄다면 불구경이 제일 재밌다. 백성들은 임금님 욕하는 재미로 산다 같은 속담들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이렇게 치우쳐있는 심성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교육이요, 수련이며 자기성찰인 것이다. 이 모든 수단들이 자기에게 도전하는 경쟁자(적)를 없애는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옛 말에 이런 말들이 있다. 백 명의 친구가 있는 것 보다 한 명의 적이 무섭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백 명의 친구가 나를 위해준다 하여도 마지막 한 명의 적이 나를 무너뜨리려고 덤비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세상사는 것을 뒤돌아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강하고 세다하여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다간 언젠가 내 앞에 강한 사람으로 변해 서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한 해 동안 어쩌다가 누구와 매듭이 만들어졌다면 반드시 풀고 가기 바란다. 오랫동안 풀지 않고 있으면 훗날 아주 풀기 힘든 매듭으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③걱정상자를 정리하자: “어느 일요일에 한 심리학자가 100명을 대상으로 “다음 일주일동안 생활하면서 자신에게 고민거리가 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종이에 적으라”고 이야기한 후 각자가 쓴 종이를 커다란 걱정상자에 담았다 일주일이 지난 후 걱정거리가 실제로 발생했는지를 확인해보았다. 그 결과 100명 중 90명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심리학자는 계속해서 나머지 10명을 대상으로 다음주일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걱정거리’를 다시 종이에 써서 상자에 넣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그 걱정상자를 열었다. 나머지 10명에게도 예상했던 걱정거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일에 지레짐작으로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거리에 대해 미리 해결방안을 찾아 극복했기 때문이다.

보이지도 않는 근심걱정 때문에 현재 생활이 우울하다면 누구라도 밝은 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여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면 미리 걱정하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전광섭 씨의 의견) 우리들의 염려를 보다 실제적으로 파악해 현실성이 있게 하자.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사는 이는 염려를 짊어지지 말고 맡겨버리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나의 쉬운 멍에를 메라는 초청을 외면하지 말라.

염려를 주께 맡기자(벧전 5:7) 잠깐 고난을 당한다 해도 온전하고 굳건하게 하여 이기게 하신다고했다(벧전 5:10) 한날의 생활만 염려해야지 미래의 염려를 미리 앞당겨 할 필요는 없다(마 6:34)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 아기는 내일과 모레에 대한 염려로 오늘을 불행하게 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시야로 세상의 한계를 결정하고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충고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