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병란은 <희망가>를 지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희망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
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인생 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신현혜 씨는 <꿈나무>라는 제목으로 팍팍한 삶의 고비를 넘어가는 어른들에게 새로운 녹색 소망을 전달해주고 있다.
흩날리는 봄의 계절은 분홍빛으로 출렁이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은 보는 이의 가슴을 움직인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꿈의 날개가 어린이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꿈은 희망이 되어 하늘 높이 치솟
아 하늘은 온통 날개달린 구름 모양의 꿈들로 가득하다. 곧 향긋한 꽃 내음이 코끝을 간질이는 봄의
계절이 따사로운 햇살의 기운을 받아 꿈은 무성한 나무로 자라날 것이다. 햇빛을 머금은 아이들의 웃
음소리는 행복하게 들려오고 그 빛은 어른이 되는 날에도 영원할 것임을 믿는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
다보고 자란 조금은 침묵의 아이, 이제는 햇살 속으로 나와 밝은 미래를 그리며 산다. 아이들이여, 먼
훗날에도 그 웃음을 잃지 말아다오
아이가 크면 “철들었다”고하고 약간 멍청한 아이에겐 ‘철부지’라고 부른다. 여기서 ‘철’은 봄철, 여름철 하는 계절(시간)을 가리킴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 무엇을 해야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같은 “때”(timing/chance)를 분간하는 것은 상당한 지혜인 것이다.
孔子도 사람의 일생을 단계화하여 30대에서 70대까지 立志, 不惑, 知天命, 耳順, 從心所欲不踰距로 규정지었다. 역시 “때”, “철”에 대한 역할기대인 것이다. 이 ‘때’와 ‘곳’ 위에서 전개되는 개인적 삶을 규정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정확한 자기이해(진단)와 상황이해가 중요하다.
老子도 “병을 병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는다”(夫唯病病, 是以不病)라고 하였고
이율곡도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인간이 德量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하면서 덕량을 키우지 못하는 기질의 병통을 세 가지로 요약·제시하고 있다.
①치우치고 비뚤어짐(偏曲) ②스스로 잘난 체함(自矜) ③이기기를 좋아함(好勝)이 그것이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개인이나 직장이나 국가에 어떤 병이 들었는지 진단할 길이 없다. 이율곡은 이 세가지 병통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사사로움(私)”이라고 지적하였다. 先公後私나 公私區分 등을 강조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公益보다 私益을 챙기고 국가체면보다 자기유익을 앞세우고있다. 1년 내내 저녁종합뉴스 방송을 보면 지도자급 인물들이 범법, 탈법, 불법, 비법으로 자기유익을 챙기다 적발된 것들이 나온다.
희망가가 아니라 절망가를 불러야 될 판이다. 하지만 소망을 포기하면 우리 모두는 공동으로 죽는다. 억지로라도 ‘Hope’를 말해야한다. 신앙 자체가 ‘믿음, 소망, 사랑’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담스는 “소망은 아름답고 청초한 용모의 처녀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이 세상이지만 그녀의 삶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천국에 있다. 신앙이 그의 검찰관이고, 기도는 그녀의 변호사이며, 인내는 그녀의 주치의이고, 자선은 그녀의 공급책이다. 또 감사는 그녀의 회계사이고, 신뢰는 그녀의 국방부장관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이 그녀의 반려자이고, 평화가 그녀의 도지사이며, 영원한 영광이 그녀의 면류관이다”라고 말했다.
신앙이 건강하면 소망은 병들지 않는다. 소망이란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지만 내적인 기쁨과 위로를 선사한다. 성경기록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충성하였습니다. 우리가 만일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큰 소망’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히 3:6)라고 선언하고 있다. 심갑섭이 지은 「어느 시인의 팡세」란 책을 읽다보니 <나는 오늘도 내일을 심는다>는 시가 있었다.
“황토빛 황량한 북한의 산야에 푸른 나무가 숲을 이루고, 쫓겨난 산짐승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떠나간 새들이 노래를 부를 그 날을 고대하며 나는 오늘도 꿈을 심는다/ 메말라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갈라진 강바닥에, 수치스러운 부끄러움을 감싸줄 물줄기가 흐르고, 송사리와 메기와 미꾸라지가 함께 노니는 그 날을 고대하며, 나는 오늘도 희망을 심는다/ 불신과 감시가 번뜩이는 공포에 주저앉은 야윈 뺨에, 새 살이 솟아오르고, 안도의 미소가 번지는 그 날을 고대하며, 나는 오늘도 기도를 심는다/ 숨을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상실의 불모지대에 획일화된 사상의 감옥이 허물어지고, 잃어버린 개성이 자유로이 어우러지는 그 날을 고대하며 나는 오늘도 소망을 심는다/ 꿈을 포기해버린 죽음의 집단 수용소에 북한 동포를 돕는 온정의 손길이 강물처럼 흘러들고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리는 봄을 고대하며 나는 오늘도 내일을 심는다”
눈을 들어 山을 보자,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에게서로다. 밤이 되어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별들이 쏟아진다. 낮에는 임의 관심 붙잡을 수 없어서 온종일 기다리다가 한밤에 쏟아진다. 별 외에는 다른 것을 볼 수 없는 한밤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