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말하면 고리타분한 보수라고 탓할 것이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표시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 옆으로 한 발짝 뒤로 한 발짝 떨어져 걸었다는 옛날이야기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스승이라서 대접받고 싶은 게 아니다. 인간 그 누구든 존경할 만한 사람 한두 명은 갖고 있는 것이 복된 사람이다.
나는 부모, 스승, 국가지도자, 종교지도자, 일가친척, 동료 들을 망라하여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옆을 봐도 존경하고 따를 사람 또는 감사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는 정말로 실패한 인간이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다. 그의 일상은 생존은 될지언정 생활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인 고덕상이 쓴 ‘흰머리 사은회’(白髮謝恩會)를 읽어보자
늙은 제자들과 더 늙은 스승이
마주하는 자리
육십년전 천진한 코흘리개로 돌아가
삼겹살 굽는 연기속에
무더기로 둘러앉아 게거품처럼 허옇게
삶을 토해내고 있다
주고받는 막소주잔에 콸콸 넘치도록
뱉어놓은 언어들
일제, 해방, 동란, 독재, 군사정권-
삶의 7할이 춥고 어두웠다며
슬픔보다도 더 짙은 아픔을
꿀컥꿀컥 삼키고 있다
듬성듬성 서릿발에 등굽은 제자는
스승의 손등을 감싸쥐고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선생님은
제자 등을 어루더듬으며
초등학교 적 곰삭은 앙금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올린다
우린 꽃보다도 청노루 눈망울보다도
더 맑고 청순했지
사랑을 털어내며 인생을 털어내며
한시대의 정점을 향햐여 도달하고 있었다
누가 봐줄지도 모르는, 단체사진 한 장 찍고
서로 한 덩어리로 엉켜 ‘백수’(白壽)를 빌었다.
이세상 모든 인간관계는 경쟁관계요 그것은 필연적으로 시기와 질투를 유발케 한다. 심지어 형제, 자매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기로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두 가지 예외관계가 있다. 그 하나는 자식이 행복하고 잘되고 상받을 때 시기, 질투, 비난없이 그냥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이다.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경쟁하지 않는다. 그가 잘되는 게 나 잘되는 것보다 더 좋다. 아들이나 딸이 똑똑하다거나 잘생겼다고 칭찬 듣는 것이 나 잘났다고 칭찬 듣는 것보다 더 기쁘다. 이것은 부모만이 느낄수 있는 특권적인 감정이요, 부모만이 느끼는 선택적 축복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손때 묻혀 가르치고 기른 제자가 잘되고 성공할 때 그의 스승도 똑같이 불편한 마음 없이 순수, 담백하게 즐거워할 수 있다. 스승의 성공은 제자가 스승보다 더 훌륭하게 되는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서의 남(藍)은 쪽이라는 풀인데 색깔이 남색(藍色)이라 쪽빛이라 불렀다. 푸른빛이 쪽에서 나왔는데 쪽보다 더 푸르다는 말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낫다는 말로 쓰인다.
“學不可以已 靑出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학문이란 잠시도 쉬어서는 안된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로 만들지만 물보다 더 차다)
우리나라에서 본받을 만한 사제관계가 추사 김정희와 그 제자 이상적의 관계이다. 김정희가 9년간 제주도에 유배되어 가시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을 때 통역관으로 중국에 오가던 이상적이 귀한 책들을 구해서 갖다 드리자 고마운 뜻으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주었는데 이 그림은 지금 국보180호가 되었다. 그 속에 공자의 말씀 “歲寒然後知松栢之不彫也”(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가 들어있는 것도 멋있는 교육이다.
훌륭한 제자를 얻기 위해선 스승이 먼저 훌륭해야 한다.
멋진 스승 金敎臣의 1939. 12. 23일자 일기와 ‘교사관의 변화’를 읽어보자 “이번 담임반도 애써하면 볼 만한 성적이 나타날 것 같다. 졸업기까지에는 학력보다 인물-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 두엇(2-3명)을 출현시킬 듯하니 점점 애착심이 짙어진다. 이일(교사직)도 버리기는 아까운 일이다. 할 일은 많고 몸은 하나뿐...” <교사관의 변화> “교사의 초기에는 교단 위에서 볼 때에 선량한 학생과 불량한 학생이 확연히 갈라져 보였다. 그리고 선량한자가 귀엽게 보이는 반면에 불량한 자는 심히 가증해 보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당해서는 선량한 자와 불량한 자가 한결같이 귀여워 보이며 사랑스러워 보여서 가르치기보다 먼저 어루만지고 싶으니 이제 비로소 교사의 자격이 생겼다고 할 것인가? 또는 이젠 벌써 교사 자격을 상실하였다 할 것인가? 우리가 스스로 판단키 어려우나 심판적 태도가 자취를 감추고 동정, 연민의 정이 노출하게 된 흔적만은 숨길 수 없다... 이른바 불량소년의 속에서 참사람을 발견할 때의 기쁨에 비할진대 선량한 학생의 교육은 도리어 무미건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이미 과연 문자대로 죄인의 괴수이어든 나보다 더한 죄인이 어디 있다고 그들을 축출할까? 교사의 초기에(나의)학식의 경중을 시험하는 듯한 종류의 질문은 교사(나)를 심히 노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교사 10여년에 철저히 깨달은 것은 (내가)무식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한 것이다. 교사로서 알아야 할 것의 10분의 1, 만분의 1도 알지 못한 자인 것을 심각하게 깨달았으니 이제는 ... 질문을 제한하지 않는다. 오직 아는 것은 아노라, 모르는 것은 모르노라고 대답할 뿐이다. 이것은 교사로서 부당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속마음은 극히 편하다(이하생략)”
김교신은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제자였고 그와 동지 내지는 사제지간으로 유달영, 함석헌, 노평구, 김정한, 장기려, 김팔봉, 정태시, 윤석중, 김성태, 손기정, 유희세, 임옥인, 주옥로, 유영모, 홍승연등 기라성 같은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늘어서 있다.
스승 한 분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제자의 수가 이렇게 많은 것이다. 참으로 山高水長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