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명사이면서 감탄사다.
한 인간이 모국어를 배울 때 최초로 배우는 단어는 “어머니”(엄마/mother)이다. 그런데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마지막 언급하는 말도 대개 “어머니”를 부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인류 최초의 언어이자 최후의 언어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기쁠 때, 너무 슬플 때, 너무 망극할 때, 너무 기막힐 때마다 “아이구머니”를 외친다. 지극히 자연스런 감탄사이다. 깜짝 놀랐을 때 “아이구 아빠”라고 하는 이는 별로 없다. 대개는 “아이구머니(아이고 어머니!)라고 외친다.
첫째는 어머니, 그 다음에 아버지, 이 두 분이 우리 생명의 근원이다. 아버지의 精과 어머니의 血이 합해서 ‘나’라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기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벗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행동 중에 첫 번째를 효도에 두고 있다. 효도하는 사람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도 기쁨이 남지만 효도하지 않은 사람은 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된다.
옛날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 우리 어머니들은 어떻게 모성애를 지켜냈던가
고덕상 시인의 <눈물의 밥>을 읽어보자.
“어머니는 반식기(반반 섞기)밥을 지으시면 위의 하얀 쌀밥만 거둬 자식들에게 나눠 먹이고, 밑바닥 보리누룽지만 긁어 잡수셨다. 어머니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늘려 먹는다고 무밥이라도 하면, 밥알만 골라, 자식들에게 퍼 담아주고, 밥알이 십리가다 하나씩 섞인 밥 퍼다 밥상 밑에 감추고 양념간장에 비벼 자시면서 참 맛있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다 그러는줄만 알았다
밥솥에 얹어 찐 황석어젓, 짚불에 구어, 짚불에 나는 갈치도막, 살점 발라 자식들에게 먹이고, 생선대가리, 뼈, 창자만 골라놓고, 식은 밥 물 말아 아궁이 앞에서 드셨다. 어머니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첫 손자 낳아 안겨드릴 때, 눈 감고 아미타불만 외우신다. 찬밥과 좋은 것만 거둬 장수하시고도 어머니 가슴이 이리 뜨거운 줄 처음 알았다. 나도 새끼 낳아보고서야 바보처럼 이 불효자식 가슴에선 소낙비가 내린다”
6.25동란 이후 10-20년간 우리나라 농어촌지역에선 절량농가가 있었고 춘궁기를 겪었으며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영양실조로 얼굴이 부엇고 임산부들은 아기 낳기가 힘들었다. 많은 식구들이 입에 거미줄 칠까봐 전전긍긍했고 풀이며 나무며 먹을 수 있는 것은 죄다 뜯어먹으며 하루하루 고달픈 나날을 지탱해왔다. 그 때의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는 게 인생의 과제였다. 우리시대 젊은이들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줄 생각하지만 이렇게 생고생한 할머니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1783-1842)도 “어머니란 스승이자 나를 키워준 은인이며 사회라는 거센 파도로 나가기에 앞서 그 모든 풍파를 막아주는 방패막 같은 존재이다”라고 했다.
탈무드에 보면 부모 특히 어머니의 역할에 대해 언급된 것이 있다. ①왼손으로 아이를 때렸으면 반드시 오른손으로 껴안아주어라.
②자녀를 두렵게 하지마라.
③성인이 된 자녀는 꾸짖지 마라.
④자녀들을 벌주지 않으면 탈선하기 쉽다.
⑤ 자녀의 모든 언행은 부모의 복사본이다. 단 성경에도 부모의 교육권을 강조하고 있다.
①“나는 아브라함이 자기 자녀들과 자손들을 가르쳐 여호와의 길을 잘 따르게 하기 위해 그를 선택했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한 모든 약속을 지키겠다.”(창 18:19)
②“그리고 여러분 자녀에게도 가르쳐주시오. 집에 앉아있을 때나 길을 걸어갈 때, 자리에 누웠을 때나 자리에서 일어날 때 언제든지 그것을 가르쳐주시오. 그것을 써서 손에 매고 이마에 붙여 항상 기억하고 생각해야합니다”(신 6:7-8)
③“여러분이 시내산에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것을 기억하시오.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소. ‘백성을 데려와서 내 말을 듣게 하여라. 내가 그들을 가르쳐 이 땅에 사는 동안 나를 존경할 줄 알게 하고 또 그 자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도록 할 것이다’”(신 4:10) “너희는 모두 너희 어머니와 아버지를 존경하여라 그리고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켜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레 19:3)
어머니를 부를 수 있고 어머니의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대답하실 수 있을 때 자주 자주 불러보기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될테니까… “작은 거인 가슴에 핀/ 사랑의 꽃은/ 시들지 않아요// 몸은 시들어도/ 어머니 마음의 꽃은/ 호흡 다 하는 날까지/ 시들지 않아요// 님 앞에 흘렸던 눈물은 자녀사랑으로 표현되고/ 신앙성장의 힘 되어요// 위대한 여인/ 그 이름은 기도했던 어머니/ 생수와 사랑 마르지 않는 샘 되어요”(전태신/ 어머니 기도)
“천막으로 시작한 개척교회 시절, 어머니께 고기를 사드릴 형편이 못 되었다. 몇 년 후 고기를 사드렸을 때는 치아가 망가져 들지 못하셨다. 교회 승합차를 샀을 때는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고향에도 못 가시고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단독주택을 마련하던 해에는 결국 돌아가셨다. “형님 집에 조금만 더 계시면 우리 집에서도 편안히 모실게요”라고 했는데…효심은 불타지만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못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전 3:17)
이는 어느 목회자의 후회하는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