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 겨레사랑
작성자
김*태
작성일
11.06.07
조회수
1709

“길을 가되 한복판으로 가지 말며, 문에 서되 한가운데 서지 말라. 어른을 모시고 가는 길에 활개치며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가는 것은 버릇없는 태도이다. 윗사람과 함께 출입할 때에는 조심하여 공손한 몸가짐을 갖는 것이 예(禮)이다”(禮記:行不中道, 立不中門)
선진국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줄을 서서 차례로 차에 오르는 모습, 길을 가던 사람들이 눈이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방긋이 웃어주는 모습, 차 내에서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 등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경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 나라가 선진국이고 좋은 나라다. 누구나 기쁘게 만드는 이런 일이 곧 인간된 도리요 국민 된 의무다.
「성공을 찾아가는 7가지 완전 소중한 비밀」을 읽다가 박성민 목사님이 소개해주는 애국자들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았다. 신앙은 국경이 없지만 신앙인은 국적이 있다.
우리가 전 세계를 다니려면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해준 여권을 갖고 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면적으로 볼 때 전 세계에서 110위지만 수출은 7위, 수·출입을 합하면 9위, 경제력은 13위 등 전 세계에서 선두주자로 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축복을 생각할 때 우리 신앙인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수상직을 받으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3대 액체인 땀(수고)과 눈물(사랑)과 피(생명)를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한 개인이 국가를 위해 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는 서약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였던 모세는 자기 백성이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후 하나님의 징벌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 매어달려 다음과 같이 민족의 용서를 빌었다.
“제가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금으로 神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십시오. 만약 용서하지 않으시려거든 주님께서 주의 백성의 이름을 적으신 책에서 제 이름을 지워버리십시오”(출 32:31-32)
신약의 사도 바울의 애국적 탄원도 비슷한 것이다.
“나는 내 동포,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있습니다”(롬 9:3)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느헤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 많은 예언자들이 자기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충만 되어 있었다.
에스더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자기 백성을 구출하기 우해 금식과 왕에 대한 간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죤 낙스도 “오,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옵소서. 아니면 이 생명을 거두어주소서”라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구원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간구한 바 있다.
영국 여왕 Mary는 “일 만 명의 군대보다 죤 낙스의 기도 한 편이 더 무섭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운이 기우는 것을 보고 가슴을 치며
“저는 우리 민족의 죄인이올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사랑해주시는데 저는 이 민족을 위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옵니다”
라며 통곡하였다. 한 번은 일본 경찰을 피해 평안도의 어느 시골집에 묵은 적이 있는데 그날 밤 비단 이부자리를 부등켜안고
“내 동포, 내 형제 그리고 애국동지들은 망국의 한을 품고 이 밤도 이역만리 해역에서 풍찬 노숙하며 떨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편안한 잠자리에 있는가?”
라며 흐느꼈다고 한다.
「상록수」를 지은 심훈은 「그날이 오면」이란 詩를 통해 광복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三角山이 얼마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恨이 남으리까/ 그날이 와서, 오호 그날이 와서/ 六曹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기어/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백범 金九 선생은 28세(1908)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굳건하게 살아갔다. 그는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란 성구를 중국어로 써서 의거를 앞둔 윤봉길 의사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는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세계에는 새로운 생활원리의 발전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이라 믿는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空想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을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樂을 삼기를 바란다.”

1885년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로부터 소개받은 예수 그리스도, 1836년 프랑스의 모방(Pierre Maubant) 신부로부터 소개 받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