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이해
작성자
김*태
작성일
11.04.25
조회수
1993

인간의 이성만으로 부활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증주의자들과 순수과학자들의 논리만 생각하면 부활은 언제든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무너진다.
인간의 눈은 똑바로 태양을 쳐다볼 수도 없고 신기루에도 속아 넘어가며 많은 착각을 범하는 부족한 것이다. 자기 눈에 손가락을 바싹 대어도 보지 못하는 부족한 것이다. 부활은 믿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믿어야 이해될 수 있는 영적인 주제이다.
무덤의 권세를 다 깨뜨리고 속량할 죄 값 다 치르시어 예수 다시 사셨음을 증거하고, 선전하고, 찬양해야 되겠다.
미국의 청교도 신학자들은 부활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들의 증언을 한 번 들어보자.
“우리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부활 때에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을 더 분명하게 확신하여야 한다.” (토마스 왓슨)
“육체는 깊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영광스럽고 불멸하는 생명으로 소생될 것이다. 영혼과 육체는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두 부분으로 거룩에 관계하는 작용은 각각 그 크기가 다르긴 해도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선한 행위는 영혼의 지시와 결의에 의해 계획되지만 육체에 의해 가시적인 행위로 표현된다. 회개의 슬픔 때문에 육체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금식할 때엔 육체의 혀가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과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육체와 연합되어 있는 영혼에 의해 이루어진다. 영혼만이 영원한 행복을 맛보고 육체는 무(無)로 돌아가 버린다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왜곡하는 것이다. 일단 영혼은 천국에서 영광을 얻게 되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 존재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무덤으로 갈 때까지 영혼과 육체는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고, 나중에 천국에서도 똑같이 상급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육체는 순종과 고난 속에서 또 장차는 기쁨 속에서 영혼의 위로가 될 것이다. 순결의 면류관이나 순교의 영예가 그 영광의 심판날에 주어질 때 육체와 영혼은 똑같이 영광에 참예할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 ‘잠자고 있는 자들의 첫 열매이신’그리스도께서 참 육체로 부활하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윌리엄 베이츠).
“죄와 의무 속에서 영혼과 연합해 있었던 똑같은 육체가 고난이나 행복 속에서도 영혼과 연합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에 부합되는 일이다”(리차드 벡스터).
“달에 가려진 태양처럼 그리스도는 부활에 의해 자신을 가리우셨다. 또 달에 가려진 태양처럼, 그리스도는 그가 빛을 준 존재들에 의해 어두워졌다. 그리스도는 자신과 함께 율법을 장사하여서 둘 다 영예롭게 했고 자신과 함께 복음을 살려서 둘 다 영광스럽게 하였다.
그의 부활은 모퉁이돌(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 모범)이었고 동시에 지붕의 마지막 돌이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이 증표로 모든 사람이 심판에 나아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행 17:31)
사탄은 그리스도의 무덤 위에서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무덤에 가두어 놓고서 이제는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고, 사탄의 보좌를 짓밟아 승리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만 고유한 신앙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 소망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안식 후 첫날(주일) 무덤으로부터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육체를 부활시키고, 그의 약속을 이루시고,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키고, 우리의 영광을 실현시키고 또 우리를 자기에게로 끌어올리시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영광중에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주님을 두었던 무덤을 와서 보라. 그곳은 비어있다”고 말하지 않고 “주님이 계신 곳에 와 보라 여기 주님이 계신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이 주님을 옮기어 어디에 두었는지를 모르겠다고 말한 마리아처럼 말하지 않는다. 현재 주님은 인격적으로 천국에 계신다.
그러나 주님은 신비하게도, 영적인 의미에서는 성례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 속에 계신다. 하나님이 물고기에게 말씀하셔서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땅을 명하셔서 예수님을 올리우신 것처럼, 주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명하셔서 그것이 우리 몸의 머리칼 하나도 건들지 못하도록 하신다”(토마스 아담스).
“그러니 우리 신자들의 육체는 얼마나 보배로운가? 이세상은 그것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참 으로 보배롭게 여기신다. 농부는 곳간에 밀을 어느 정도 저장하고 있고 밭에도 또 다른 밀을 경작하고 있지만 밭에 있는 밀이나 곳간에 있는 밀이나 그에게 그 귀중함은 똑같은 것이다”(토마스 왓슨).
아무리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억울함을 당해도 부활에 대한 확신만 갖고 있다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크리스천들의 싸움은 육과 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적전쟁이고 영적전쟁에선 이미 예수님이 승리해 놓으신 전쟁이기에 결과를 알고 싸우는 것이기에 불안함이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미 사탄의 공격을 모두 물리치셨고 최후에 사탄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 역사적 대반전이 일어나 예수님의 승리로 끝났다.
사탄아 너의 쏘는 것과 해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님께서 완승을 거두셨나니 이제 그 분을 따르고 순종하는 모든 자들의 첫 열매(시범)가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결단코 두려워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