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추워도 코는 막지 않는다.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은 생명 유지의 필수조건이다. 숨이 막히면 곧 죽는다.
영적 삶에 있어서 호흡은 기도다. 기도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셨다. 예수님 자신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를 하여 오늘날 새벽기도회의 모범을 보였다.(시 108:2, 막 1:35)
기도가 곧 생활이니까 특별히 일상을 위한 기도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폭풍 같은 사랑을 바라지 않나이다. 함박눈 같은 축복도 바라지 않나이다. 아침이면 평온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의 햇살을 맞이하게 하시고 사랑하는 이들과 감사의 눈인사를 나누게 하시며 소박한 밥상에 웃음 꽃 피어나게 하시고 한낮의 소란함 속에서나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 속에서도 여유롭고 한가로운 하루하루를 누리게 하소서.
저무는 하루를 보내는 서운한 눈길 속에서도 쓸쓸함보다는 기쁘게 보낼 줄 아는 너그러움이 손수건처럼 나풀대기를 바라나이다.
다가서는 모든 이들과 함께 바라보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잔잔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포근한 일상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나이다.
소박한 희망 그래서 나에게 희망이 하나 있다면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건강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나에게 소박한 희망이 하나 있다면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슬퍼하기보다는 행복해하고 항상 기뻐했으면 하는 겁니다.
별들처럼 반짝이며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반짝이는 별처럼 기쁨으로 살았으면 하는 겁니다.
살다보면 슬플 때가 왜 없겠어요? 살아가다 보면 아플 때도 분명 있을 거에요. 그래도 내 소박한 희망 하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아프거나 슬퍼하기보다는 기뻐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날 때에도 반갑게 서로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웃과 친구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매일 같이 이런 소박한 기도로 일과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의 희망 메시지를 전해드린다. 정용철 님이 쓰신 <바라기와 버리기>이다.
“신발장에 신발이 늘어갑니다. 옷장에 옷도 많아집니다. 부엌에 그릇들이 쌓여갑니다. 사기만 하고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늘어갑니다. 머리에 생각도 복잡해집니다. 몸이 자꾸자꾸 무거워집니다. 바라기만 하고 내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발장의 먼지만 털어낼 게 아니라 신지 않는 신발들도 버려야겠습니다.
옷장의 옷도 차곡차곡 쌓아둘 것이 아니라 자주 입는 옷만 남기고 정리해야겠습니다.
부엌의 그릇도 사용하는 것만 두고 모두 치워야겠습니다.
삶이란 이렇게 ‘바라기’와 ‘버리기’의 치열한 싸움입니다. 내 마음의 많은 생각들 가운데, 내 생활의 많은 일들 가운데. 정말 내 삶을 아름답게 하고 의미 있게 하는 것들만 남겨두고 계속 버려야 하겠습니다.”
이렇듯 버릴 줄 아는 지혜가 매우 중요하다. 빈 그릇이 되어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의 쓰레기도 주워서 버리고 마음속의 쓰레기도 털어서 청소해야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 중심으로 모으기보다는 남 중심으로 흩어서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성경에서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고(행 4:35)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후 9:9)고 쓰여 있다.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라고도 쓰여 있다.(행 20:3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다.(잠 11:24-25) 라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사회가 전통적으로 가장 풍요하게 즐기는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던 우리 조상들의 그 감사와 기대를 생각해보자.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초가을의 햇곡식과 새 과일들이 얼마나 고마웠겠나 짐작이 간다.
김진홍 목사님은 추석 때 교인들이 보내오는 선물을 모두 거실에 받아놓았다가 추석 전날 저녁에 이 선물들을 차에 싣고 교인들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부터 일일이 찾아다니며 다시 나누어 준다고 한다. 김 목사님의 특별한 추석나기 예식이다. 결국 많은 교인들이 목사님 댁을 선물 중개 장소로 삼아 목사님께 가져다 드리고 김 목사님은 그 사랑과 은혜를 누린 다음 다시 교인들에게 나누어 추석을 함께 즐기는 산타크로스 추석명절이 되는 것이다.
이게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어려운 일이다.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내 것’이던 유아적 소견이 ‘내 것도 네 것, 네 것도 네 것’으로 성장하려면 상당한 은혜를 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물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고차원의 축복을 발견했거나 맛 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때는 우리들도 ‘바라기’보다 ‘버리기’운동을 펼쳐보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