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에서 체벌에 관한 논의는 오랫동안 지속돼온 교육과제중 하나다.
사실 ‘체벌’이란 용어 자체가 적합하지 않다. ‘사랑의 매’란 말도 쓰이지만 나는 훈련과 교정 또는 행동수정방법 등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일본이나 한국이 몸의 어느 부분에 회초리 때리는 일을 실시해온 반면 구미 각국의 교육에선 직접 손대는 대신 따로 세워 격리시키거나 다른 방으로 옮기거나 퇴교(전학)시키는 방법을 써온 차이만 있을 뿐 교육자에겐 학생에 대한 지도 과정에서 상벌(칭찬과 꾸중)을 통한 행동수정의 권리가 주어져 왔다. 이른바 학생의 학습권 못지않게 교육자의 교육권 또한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시 89:32)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A refusal to correct is a refusal to love; love your children by disciplining them)
란 말이 있어 매(楚撻: rod)를 통한 교정 작업은 오래 전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이 인간을 가르치고 시정하는 방법으로도 활용돼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미운자식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은 매 한대 더 치라’는 말이 있다. 해병대 훈련과정이 타 군에 비해 혹독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해병대에서 교육을 마치고 해병대로 군복무를 마친 사람은 장, 사병 막론하고 항상 빨간색 명찰에 자부심을 느끼며 ‘한번 해병이면 영원히 해병이다’는 표어를 힘주어 말하고 있지 않는가?
사회에 나와서도 ‘해병대 전우회’는 결속력이 막강한 단체로 부러움을 사고 해병대 출신끼리 만나면 몇 기(몇 년도 근무자)인가만 확인하면 금방 선후, 상하가 결정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육군의 특전사나 HID, 공군의 파일럿, 해군의 UDT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강인한 훈련을 함께 견디어 냄으로 스스로 건강한 체력도 갖추었고 정신적으로도 못할 일이 없다는 담력과 용기 그리고 실천의지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금이나 철의 제련 과정도 마찬가지로 순도가 높은 보석이나 광물을 얻으려면 그만큼 뜨겁고 힘든 제련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도 같은 원리이다. 흙과 물을 합해 빚어 낸 도자기들이 높은 온도의 가마에서 뜨거운 불의 시련을 겪고 나야 낭랑한 소리를 내는 귀중한 보배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학습자의 인권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아직도 세상 모든 현상을 정확히 판단할 식견이 갖추어지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도 성인의 인권과 같은 비중으로 대하라는 것은 아니다.
여성을 여성으로 대해주는 것이 필요하듯 아이는 아이처럼 대해주는 것이 역시 인권의 요체이다. 가령 두 돌 지난 아이가 양날이 시퍼런 면도칼을 갖고 싶다고 요구할 때 그의 의견을 100% 수용해 칼을 주는 부모가 있겠는가?
“아가야 너는 아직 날카로운 칼날을 다룰 준비가 안 됐으니 대나무 잣대를 갖고 놀거라.”
하고 거부해야 참된 부모일 것이다.
아침 첫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여러분 6교시까지 공부하고 싶습니까? 지금 당장 집으로 가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다수의 학생들이 후자를 선택한다면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모두 집으로 보내는 것이 인권존중이겠는가?
수능시험에 포함되지 않는 학과목을 가르치는 한 교사의 말이 잊혀 지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팔 베게 하고 정식으로 자고 있는 학생들의 머리칼만 바라보면서 독백 하듯이 강의해야 되는 고통을 한번 상상해 보라는 것이었다.
” 일어나 바른 자세로 공부하라고 타이르면, “선생님, 여기서 조금 자야 밤에 학원에 가서 공부할 수 있어요. 잠 좀 자게 놔두세요!”라고 응답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는가?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인권문제가 나오고 체벌교사로 낙인찍히며 학부모가 항의하고 상부기관에서도 질책하게 된다면 그 누가 신상에 피해를 보면서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이런 교육풍토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학생 본인과 학부모가 될 것이다. 최근 일부 교육감들이 학생인권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복장이나 머리모양도 자유롭게 하고, 시험도 보고 싶은 사람만 보고, 초등학생의 데모참여도 막으면 안 된다는 극단적인 시안들을 내놓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교육포기요, 학생을 방목하는 것이다.
영국의 이튼스쿨이나 일본의 초· 중· 고교는 인권을 무시해서 교복을 입게 하는가? 교육은 성장과정에 있는 학습자를 교육자가 책임지고 그 사회와 세계에서 일생동안 유효하고 생산적인 인간이 되도록 다듬고 이끌어 주는 것이다. 마치 조경사가 정원수를 다듬는 것이나 조련사가 경찰견을 훈련시키는 원리도 있는 것이다. 전국 학교장 91%가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