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버지, 아버님
작성자
김*태
작성일
10.05.24
조회수
1853


청주 상당교회 정삼수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소개한다.
정월 초하루 날 새해 감사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시집 간 따님에게서 문안 전화가 왔더란다. “아빠, 안녕하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버님 바꿔드릴게요.” 하더란다. 친정아버지를 부를 땐 “아빠”고 시아버지를 부를 땐 “아버님”이라고 하는데 그 차이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셨단다.
이 두 단어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정아버지는 혈연관계로 아버지요, 시아버지는 법률관계로 아버지(father in law)다. 이 둘을 혼돈하지 않아야 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사랑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 서로 간 부단히 노력해야 되는 관계다. 혈연관계의 부자간이나 모녀간에는 특별한 노력이 없어도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는 정이 있어 오해도 적고, 섭섭함도 쉽게 사그라 든다. 그러나 법률관계의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며느리나 사위는 조심스럽게 노력해야 되며 맺힌 게 생기면 쉽게 풀어지지도 않는 관계다. 그러나 이 모두가 멋있는 인간관계요 살맛나는 만남들이다. 오늘은 그 아빠와 아버님의 중간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해보자.

「四字小學」에 보면 아버지는
“나에게 따뜻하게 옷을 입혀주시고, 배불리 밥을 먹여주시니, 그 은혜는 하늘만큼 높고, 덕은 땅만큼 두텁다.”고 가르쳤다.
“내가 남의 어버이를 공경하면 남도 우리 어버이를 공경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앉은 자리에선 성내며 남을 꾸짖지 말라.”
등도 있다.
영화배우 최불암 씨는 “아버지”란 제목의 글(2009. 10. 16. 조선일보)에서
“아버지! 그것은 ‘이름’이다. 부르는 것만으로도 존재가 되어주는 이름.
아버지는 ‘자리’이다. 언제나 거기 있는 자리. 홀로 떠받치고 묵묵히 지키고 있는 어쩌면 대들보와 같은 영원한 자리이다. 때론 꾸짖고, 때론 달래가며, 철없는 자식 세대에게 잃어버린 가족애를 일깨우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은 천상 부모의 몫이요, 웃어른의 몫인게다. 어려운 시기에 심신이 지쳐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웃음으로 작은 위안을 주고, 무거운 어깨를 다독이고, 따뜻이 손 잡아주는 ‘아버지’가 되어주자.”라고 써있다.

옛날 아버지 이야기도 들어보자.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1737-1805)은 50세가 넘어 벼슬에 올랐는데 지방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들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그 중에는
“내가 직접 담근 고추장을 작은 단지로 하나 보낸다. 사랑에 놓아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겠다.”라든지
“지난 번에 보낸 소고기 볶음은 잘 받아서 아침, 저녁 찬거리로 했느냐? 어째서 한 번도 좋다는 뜻을 말해주지 않느냐? 답답하고 답답하구나. 맛이 어떤지 자세히 알려다오.”
라는 구절도 있다. 겉으로는 엄격했지만 한없이 자상했던 아버지의 부성애.
그가 40대 중반에 얻은 둘째 아들 박종채는 뒤에 「과정록」이란 책을 써서 이런 아버지의 전기를 남겼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귀양지에서 18년을 보내는 바람에 그의 두 아들은 과거도 볼 수 없었다. 서로 만날 수도 없는 부자지간에 얼마나 마음이 쓰렸을까. 따라서 정약용도 자녀들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폐족으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 밖에 없다. 중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경학(經學)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후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어야 한다.”
같은 구절이 들어있다.

인도의 지도자 네루가 6번째 투옥됐을 때 겨우 13살인 딸 인디라 간디가 혼자 남겨졌는데 네루는 3년 동안 딸에게 196통의 편지를 보냈다.
영국의 문필가 필립 체스터필드(1694-1773)도 유럽에서 공부 중이던 16살 짜리 아들에게 앞으로 2년 정도의 시간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자신이 터득한 여러 가지 교훈을 편지로 보냈다. 그것들이 모여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는 책이 되었다.
바울 선생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령을 알았으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4-17)
“부모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라고 썼다.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5-21)

모든 아버지들은 잠든 시간만 빼고 자기 자식을 잊는 법이 없다. 이제 다시 우리 아버지들을 추억해보자. 그리고 내 자식들에게 편지를 쓰자. 아버지가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날에도 그 편지를 통해 자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편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