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六正)와 육사(六邪)
작성자
김*태
작성일
10.02.01
조회수
1853


요즘 ‘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을 말하면 ‘지금이 왕조시대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도 대통령을 돕는 장ㆍ차관이 있고, 사령관을 돕는 참모가 있으며, 총장을 돕는 교무위원이 있고, 기업체 CEO를 돕는 임원이나 간부들이 있다. 모세를 돕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 있었고, 목회자를 돕는 장로들도 있다. 꼭 君臣관계는 아니지만 지도자와 협력자 관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名將 밑에 弱卒 없다.”는 말도 있고, “종 잘 둬야 주인노릇 한다.”는 말도 있다.
1475년에 조선시대 성종은 좋은 신하(六正)와 나쁜 신하(六邪)를 정부 각 관청의 벽에 써 붙이도록 했는데 그 내용은 漢나라 劉向이 쓴 「君道」와 「臣術」에도 나오는 것으로 훌륭한 공직자상의 지침이라 할 수 있다.

먼저 六正臣下를 들어보자.
① 어떤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예방하여 군주를 편안하게 하는 자로 유교사회의 周公같은 사람(성신/聖臣),
② 사심 없이 군주에게 장기적인 대책을 진언하고 성사시켜 군주를 착한 임금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양신/良臣),
③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賢人을 추천하고 옛날의 德行을 군주에게 알려주는 사람(충신/忠臣),
④ 성공할 일과 실패할 일을 간파해 잘못될 일은 예방하고, 구제함으로 화를 복으로 바꾸어 군주가 걱정이 없도록 하는 사람(지신/智臣),
⑤ 법을 받들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되 봉록과 하사품은 사양하고 의복과 음식을 節儉하는 사람(정신/貞臣),
⑥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아첨하지 말고, 면전에서 군주의 잘못을 간언해 죽기를 사양하지 않는 자로 자기 몸은 죽어도 나라만 잘된다면 후회하지 않겠다는 사람(직신/直臣)이 있다.

이어서 六邪臣下도 알아보자.
① 벼슬을 좋아하지만 公事보다는 私利私慾에 힘쓰면서 늘 세상 조류의 부침을 관망하면서 처신하는 자로 숫자만 채우는 신하(구신/具臣),
② 군주의 언행은 무조건 칭찬하면서 남몰래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갖다 바쳐 군주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하지만 뒤에 닥칠 환란에 대비하지 않는 사람(유신/諛臣),
③ 말은 잘하고 얼굴빛은 좋지만(巧言令色) 어진 사람을 미워하고 자기편을 진출시키기 위해선 단점을 숨기고 장점만 나열하며, 반대편을 쫓아내기 위해선 장점은 숨기고 단점만 나열해 군주가 상벌을 잘못 시행케 만드는 사람(간신/奸臣),
④ 남의 잘못을 꾸며낼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고 남을 기쁘게 할 수 있을 만큼 말도 잘하지만 집안에서는 골육지친을 이간질하고 집 밖에서는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참신/讒臣),
⑤ 권력과 세도(실권)를 장악해 국사(國事)의 경중도 私門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당파를 만들어 군주의 명령도 무시하고 指鹿爲馬를 자행하는 사람(적신/賊臣),
⑥ 간사한 말로 아첨해 군주를 불의한 곳에 떨어지게 하고 朋黨을 만들어 군주의 총명을 흐리게 하며, 옳고 그름, 희고 검은 것의 구분도 없어서 군주의 잘못이 국내외에 퍼져나가게 만드는 사람(망국지신/亡國之臣)이다.

성호 이익(李瀷)은 모든 공직자와 보직자들은 결국 이 六正六邪의 12종류 중 어느 한 부류에 속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六邪臣下는 공직에서 퇴출시켜 국민들이 믿고 편안하게 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악형에도 굴복하지 않고 순사(殉死)한 조선 초기의 6충신을 死六臣이라 하는데 그들은 승지 성삼문(成三問), 형조참판 박팽년(朴彭年), 예조참판 하위지(河緯地), 직제학 이개(李塏), 동지중추원사 유응부(兪應孚), 사예 유성원(柳誠源)이다.
이들은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신임을 받았고, 문종으로부터는 나이 어린 세자(단종)를 잘 보필해 달라는 고명(顧命)을 받은 사람들로서 수양대군(숙부)이 1455년에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죽음으로 충성을 다하며 끝까지 수양대군을 ‘전하’라 부르지 않고 ‘나리’라 불렀다. 1691년 숙종에 의해 관직이 복구되고 노량진 동산에 신위가 모셔졌다.

또한 죽지는 않았으나 항의의 뜻으로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6명을 生六臣이라 하는데 그들은 김시습(金時習), 원호(元昊), 이맹전(李孟專), 조려(趙旅), 성담수(成聘壽), 남효온(南孝溫) 등이다. 이들은 살아있기는 했으나 귀머거리나 소경인 체하고, 방성통곡하거나 두문불출하여 폐인으로 자처하면서 단종을 추모하였다. 그리고 숨어살면서 사(辭), 부(賦), 시(詩), 서(書), 잠(箴), 명(銘), 변(辯), 찬(贊), 고(誥), 문(文), 논(論), 설(說), 기(記), 전(傳) 등을 써서 문집을 냈다. 세상과 등지고 살면서까지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실천한 貞節의 대표자들이다.
패거리가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함께 뜻을 모아 수고한 사람들로서 공직을 떠난 뒤에도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된다. 훌륭한 주군(主君)과 믿을만한 신하(臣下)의 만남도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