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스 파토스 로고스
작성자
김*태
작성일
10.01.18
조회수
1940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쳐준 설득의 3요소 즉 이토스(ethos), 파토스(pathos) 그리고 로고스(logos)를 잘 활용하기 바란다.
Ethos는 명성, 신뢰감, 호감 등 메시지전달자의 인격적 측면으로 설득과정에 60%정도 영향을 준다. Pathos는 공감, 경청 등으로 친밀감을 형성하거나 유머, 공포, 연민 등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적 요소로 설득에 30% 영향을 미친다. Logos는 논리적 근거나 실증적 자료로 결정을 정당화시키는 논리적 측면인데 설득에 10%쯤 영향을 준다고 한다.

설득에 성공하려면 호감과 긍정적평가로 먼저 관계(파이프연결)가 맺어진 후(이토스) 상대방의 감정에 호소하고(파토스), 그다음 행동변화의 논리적 타당성을 제공해야한다(로고스). 그런 다음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다시 이토스를 활용해야한다. 원래 “좋다, 싫다.”는 데는 이유가 없다. 단지 설명을 위해 이유를 제시할 뿐이다.
하나님은 수직적 신앙(神人關係) 못지않게 수평적 신앙(人間關係)도 강조하셨다. 두세 사람이 합력해 간구하면 응답하겠다, 제물을 차려놓았어도 마음에 걸리는 인간관계가 있으면 먼저 가서 풀고 오라,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겠다고 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 「지금 ․ 여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지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천국을 딴 세상에서 찾으면 안 된다.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지 말고 차안의 세계에서 모형천국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관계가 중요한 이유요, 인간관계에서 이성보다 검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영어단어. ‘affect’는 명사로 쓰면 ‘감정’이지만 동사로 쓰면 ‘-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정서란 단어 ‘emotion’도 라틴어 ‘emovere'가 어원인데 이는 “e”(밖으로)+“movere"(움직인다)의 뜻이다. 행동결정요인은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흡연이 얼마나 해로운가를 판단하는 것은 이성이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게 하는 것은 감정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끊지 못하는 것이다. 小食과 규칙적인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가 많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편히 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좋고 싫고에 따라 선택을 먼저 해놓고 그 선택에 대해 그럴듯한 이성적(논리적)근거를 찾게 된다. 그 논리와 지식은 단지 그의 선택을 정당화 시켜주는 보조수단이요 뒷정리하는 과정일 뿐이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와 피워야 하는 이유를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금연이유보다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흡연이유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가 선택한 흡연을 지지해주기 때문이다. 연애하다 마음이 변한 사람은 파경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를 댄다. 그러나 그 이유는 파경의 원인이 아니라 파경을 정당화하는 결과적 논리들이기 쉽다.

따라서 사실이나 논리로 사람을 설득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된다. 예쁘게 보기로 들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이고, 밉게 보기로 들면 발뒷굽치가 달걀 같아도 흠이 된다는 속담이 이를 말해준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감정적인 존재이다. 모든 정보들은 감정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되고 선택되고 처리되기가 쉽다.

심리학자 로지가 두 집단의 대학생들에게 “나는 약간의 반란은 좋은 것이며 자연계에서의 폭풍처럼 정치계에서도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을 토론주제로 소개했다. A집단에겐 토마스 제퍼슨의 말이라고, B집단엔 레닌의 말이라고 설명했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두 집단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A집단은 거의 찬성했고 B집단은 거의 반대했다. 메시지내용보다 제퍼슨과 레닌에 대한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을 말했나보다 누가 말했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도 싫다.”든지 “스님이 싫으면 그가 입고 있는 가사도 밉다.”는 것도 감정전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좋아하기 전에 먼저 예수 믿는 사람이 좋고 목회자나 장로가 좋고 교회가 좋아야 한다. 당장 보이는 사람들이 싫은데 그 뒤에 있다고 생각되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보면 실망하게 돼있으니 하나님만 보고 믿으라.”는 말은 정답이 아니다. 하나님만 보고 믿으려면 교회까지 모일 필요가 없다. 집안에는 하나님이 안 계셔서 밖으로 나오는가? 예수님만 믿으려면 굳이 출석교회를 정할 필요가 없다. 다른 교회엔 예수님이 안 계셔서 우리교회까지 오는가? 하나님도 믿고 사람도 의지해야 되니까 교회란 조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당신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따를 기분(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말도 울리는 꽹과리소리(소음)로 들릴 것이다.
논리의 세계보다 감정의 세계가 먼저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으면 이론보다 감정을 터치하라. 일단 서로가 좋아하게 되면 논리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