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작성자
김*태
작성일
09.11.30
조회수
1851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동시에 알을 쪼아야 하듯 가정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가족 간 이해와 협조가 최우선이다. 이것이 줄탁동시(啐啄同時)이다.

학교에선 사ㆍ제간, 기업에선 노ㆍ사간, 교회에선 목회자ㆍ평신도간 상호이해가 있어야 제대로 갈 수 있다.
이제 詩心이 무르익는 가을을 맞아 부모님들이 자녀를 아끼는 사랑과 자녀들이 부모님을 향한 효심을 읽어보자. 詩를 통한 줄탁동시를 해보자는 것이다.

먼저 김시천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읽어보자.

“당신이 이 세상을 있게 한 것처럼 / 아이들이 나를 그처럼 있게 해 주소서 / 불러있게 하지 마시고 / 내가 먼저 찾아가 아이들 앞에 / 겸허히 서게 해 주소서 / 열을 가르치려는 욕심보다 / 하나를 바르게 가르치는 소박함을 / 알게 하소서 / 위선으로 아름답기보다는 / 진실로써 피 흘리길 차라리 바라오며 / 아이들의 앞에 서는 자 되기보다 / 아이들의 뒤에 서는 자 되기를 바라나이다 / 당신에게 바치는 기도보다도 / 아이들에게 바치는 사랑이 더 크게 해주시고 / 소리로 요란하지 않고 /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깨우쳐 주소서 / 당신이 비를 내리는 일처럼 /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일러주시고 / 아이들의 이름을 꽃처럼 가꾸는 기쁨을 / 남몰래 키워가는 비밀 하나를 / 끝내 지키도록 해 주소서 / 흙먼지로 돌아가는 날까지 / 그들을 결코 배반하지 않게 해 주시고 / 그리고 마침내 다시 돌아와 / 그들 곁에 순한 마음으로 / 머물게 하소서 / 저 들판에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 우리 또한 착하고 바르게 살고자 할 뿐입니다 / 저 들판에 바람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 우리 또한 우리들의 믿음을 지키고자 할 뿐입니다 //”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건강과 지혜, 총명함과 성공, 화목과 순종, 세계적인 지도자, 최고의 부자, 학박사 그리고 재산과 명예와 권세를 누리도록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보다 “바르게” 가고, “youthful”보다 “useful”하고, “fashion”보다 “passion”을 지니도록 기도함이 필요할 것이다. 시인처럼 열을 가르치려는 욕심보다 하나를 바로 가르치려는 소박함이 중요하고, 소리로 요란하지 않고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깨우쳐 달라고 기도하면 좋겠다. 꽃밭에 물을 주는 심정으로 아이의 필요를 챙겨줄 수 없는지 생각해보자. 인생의 겨울이 와도 서로 끌어안으면 따뜻할 수 있음도 가르쳐 주어야겠다.

나태주의 「기도Ⅰ」도 자녀들을 위한 부모님의 기원으로서 일품이다.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 나는 지금 어디에 와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

내가 춥고 가난한 처지일 때, 나보다 더 추운 사람,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스스로 어디에 와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묻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 자녀들의 부모를 향한 詩를 들어보자.
손택수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를 골랐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 둔 다섯 살 대신 /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던 목욕탕 /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父子)들을 /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 해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아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온 아버지의 등을 밀면서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다. 평생 자식을 위해 그토록 수고한 아버지의 인생이 낙인처럼 찍혀있는 등을 밀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 때문에 목욕탕에도 가지 않는다고 오해했던 아들의 마음이 미어지게 아파온다.
자식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던 아버지의 인생자국들을 우리 자식들은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