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시간에 목사님이 “성경지리공부를 해볼까요? 오바댜가 어디 있지요?”하니까 한 집사님이 “캄보디아 밑에 있나요?” 했다든지, “요단강은 어디 있지요?”하니까 “요단강은 죽어서 건너가는 강 아닌가요?”했다고 한다.
성경을 바로 읽고 올바르게 해석하며 적절히 적용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중심과제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매일 식사하듯이 성경을 읽고 한 주 간에 몇 번씩 설교를 듣는다. 설교도 성경을 본문으로 제시하고 해석, 응용, 적용한다는 점에서 성경공부에 포함시킬 수 있다.
최근에 발행된 개혁개정판에는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가 ‘뽕나무’가 아니라 ‘돌무화과나무’로 고쳐져 있음도 볼 수 있다.(눅 19:4) CBS에서 민영진 목사님과 함께 성경난해구절들을 공부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혹시 그 프로그램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제가 느낀 점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성경은 크게 직역성경과 의역성경으로 나눈다. 직역성경은 개역판, 개역개정판, King James Bible 등으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며 교회의 공식적인 예배에서 주로 쓰인다.
이에 비해 의역성경은 공동번역, 새 번역, 쉬운 성경, Good News Bible 등으로 내용의 맥락(본의도)을 쉽게 알도록 해석번역 한 것이다. 어떤 구절을 읽다가 잘 이해가 안 되면 의역성경을 참고하든지 앞뒤 문맥을 넓게 살펴 유추하면 좀 더 정확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이제 정확한 해석이 필요한 몇 구절을 생각해보자.
①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 127:2)는 말은 예배시간에 졸거나 수업시간에 낮잠 자는 사람의 변명근거가 아니다. 앞뒤 문맥을 보면 집짓는 자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허사가 되고 경계병(보초)이 밤새도록 경계근무를 잘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면 헛일이 되며 사람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수고해도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지 않으시면 소용이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단잠을 자고 있는 시간에도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농부는 단지 씨만 뿌리고 나면 모든 성장과 결실은 하나님이 담당해 주신다(악 4:26-27)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②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 25:21-22)는 말도 원수를 사랑하는 구체적 방법을 가르쳐준다.(롬 12:20)
잘못한 행위는 미워해도 그 인간 자체는 미워하지 말며 원수라도 궁지에 처했을 땐 힘껏 도와주고 그 난관을 벗어나게 해주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가 부끄러워하고 마음이 열려 혹 회개할 기회와 관계개선의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권면이다. 우리의 선행 자체는 하나님이 보상해 줄 것이란 약속도 덧붙였다. 대상에 상관없이 우리의 봉사와 헌신은 하나님이 기억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③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는 구절을 보자.
원래 하나님 은혜 안에 있는 자에겐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요 16:33). 근심하지 말라. 평안하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방주 안에 탄 사람들은 세상을 다 쓸어가는 홍수까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엄마 등에 업힌 아기는 스스로 교통신호를 지키려는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어머니가 다 해주시니까 자기는 엄마에게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 내일 일은 내일에 가서 염려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일 일은 내일이(하나님이) 염려할 것이니 너는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염려의 의미 없음”을 가르쳐 준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義만 생각하라는 말씀이니까 Bobby McFerren이 부른 “Don‘t worry, be happy"만 부르며 살라는 말씀이다.
④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악한 자)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는 말씀도 마 5:33부터 문맥을 연결해 보면 이해가 쉽다.
예부터 맹세를 함부로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키라는 교훈을 들었으나 앞으로는 절대로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늘이나 땅이나 예수살렘이나, 자기 머리, 등 어디를 대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쳐 준다. 사실이 아니면 성(姓)을 간다느니, 내 아버지 자식이 아니라느니, 손에 장을 지진다느니 등등 극단적인 단서를 대면서 자기 말이 사실임을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
이 말씀은 말(발언)에 대해 거품을 빼고 간단명료하게 yes와 no를 언급하라는 것이다. 자기 언어의 진실성을 지키고 품위를 유지하며 언어를 통해 신용사회를 만들어 가라는 당부이다.
요즘 우리 사회엔 말의 힘이 너무 약해졌다. 서로 말을 믿지 못하니 증인을 세우고, 공증을 받고, 녹취록을 제출하고, 녹음이나 녹화테이프를 제출하면서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말의 신뢰가 없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yes면 yes고, no면 no 한마디로 대화가 진행돼야지, 하고 안했다, 안하고 했다하면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