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강물 위를 지나가거나 새가 바위에 앉았다 날아가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는 인생을 함부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살구는 씨를 남기며 사람은 이름(명성/명예)을 남긴다고 했다. 한번 왔다간 자리에 이름 석 자를 남기려고 바위에 글을 새기거나 건물 기둥에 낙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고, 자기의 흔적을 새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엔 어떤 것이든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꽃잎과 꽃가루가 남고, 군인들이 야영하다 떠난 곳에는 텐트 쳤던 자리와 트럭의 오고간 흔적이 남아있다. 야영객이 놀다간 산 계곡에 쓰레기와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있음도 본다.
사람이 이 땅에 머물다 떠나면 크게 두 종류의 흔적이 남게 돼있다. 첫째는 그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행한 각종 행실이 흔적으로 남게 된다. 어떤 이는 악하고 추한 행실의 흔적을 남기고 어떤 이는 자랑스럽고 고귀한 흔적을 남긴다.
구한말 친일매국의 대표자로 알려진 李完用(1858-1926)은 지금까지도 비참하고 남루한 이름으로 남아있어 관련된 후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조국을 위해 자기 한 몸을 초개같이 불살라 30대 초반에 순국한 安重根 의사(1879-1910)나 울면서 달라붙는 아들에게 “아들아, 너는 나만의 아들이 아니요, 나 또한 너만의 아비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상하이로 떠났던 尹奉吉 의사(1908-1932)는 두고두고 자랑스런 이름으로 남아있다.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선악 간에 두고두고 남게 돼있으며 후대인들의 기억 속에도 선명히 남게 되는 것이니 순간만 지나고 보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자손을 자기 흔적으로 남겨놓게 된다. 시인들은 詩로 말하고, 음악가는 악보로 자기 뜻을 표현한다. 화가가 그림으로 말하듯, 학자는 책이나 논문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구약시대의 아브라함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항상 천막 쳤던 자리와 제단 쌓은 자리가 남아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텐데 그렇다면 어떠한 흔적을 남겨야 되는가? 에이브러햄 링컨은 평소에 한 가지 큰 소원을 친지들에게 말하곤 했다. 마지막 날 그를 땅에 묻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싶어했다. “애이브러햄 링컨, 그는 잡초를 뽑고, 꽃을 심다 떠난 사람이다.” 우리도 잡초를 뽑고 꽃을 심다 떠나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겪어본 배우자나 자녀들 및 제자들이나 교인들, 나를 기르며 가르쳐 왔던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직장의 동료들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어떤 흔적으로 잔상(殘像)을 남길 것인가? 나의 옷이나 재산, 나의 지위나 직분 등 모든 겉꾸밈들을 벗겨버린 뒤 마지막 남는 내 모습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나아만 장군은 아람의 군대장관으로서 실권을 행사하는 실력자요, 제복 위에는 숱한 무공훈장과 장식을 달았지만 옷을 다 벗고 난 모습은 불쌍한 문둥병 환자였다(왕하 5:1-7). 그의 겉장식과 속 모습은 이렇게 딴판이었다. 구약시대엔 종기가 발병하면 종기나 화상의 흔적인가 문둥병 흔적인가 제사장의 심사를 받아야했다(레 13:18-23, 28).
이사야는 유다국가의 현실에 대해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 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4-6).”라고 지적하며 안타까워했다.
오늘 우리도 나라와 사회와 교회를 자세히 살펴보자. 어떤 흔적들을 볼 수 있는가? 화려한 겉옷 속에 부끄러운 흔적이 없나 찾아보자. 괜찮다고 스스로 속이다가 큰 후회의 날을 당하지 않아야겠다(사 3:24-26). 이제 각성하고 근신하고 돌이켜야 한다. 세상을 향해 나는 예수님의 흔적(갈 6:17)을 가졌는가 살펴봐야 한다.